▲ 2022 KBO 신인드래프트 2차지명에서 한화가 가장 먼저 호명하자 두 손을 떨며 얼굴을 감싸쥐는 세광고 투수 박준영(가운데). 왼쪽에는 SSG 7라운드에 지명된 배명고 유격수 김태윤, 오른쪽은 KIA 1라운드에 지명된 강릉고 최지민. ⓒ스포츠타임
[스포티비뉴스=대구, 이재국 기자] 13일 대구 더 팔래스 호텔. 최재호 감독(강릉고)이 이끄는 청소년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당초 이들은 10일부터 19일까지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리는 제30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할 예정이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인 확산세로 인해 대회가 연기됨에 따라 일생에 한 번 뿐일 수도 있는 대회에 나가지 못하는 불운을 겪었다.

그러나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회장 이종훈)는 이들에게 청소년 국가대표라는 자부심과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이날의 모임을 기획하게 됐다. 태극마크가 달린 유니폼을 나눠주고, 평생 남을 기념 사진이라도 찍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마련했다.

그런데 청소년 대표팀 소집일인 이날은 고교 선수들에게 야구 인생의 항로가 결정되는 가장 중요한 날이었다. 바로 2022 KBO 신인드래프트 2차지명이 열렸기 때문이었다.

선수들은 호텔 컨벤션홀에서 유니폼과 장비 등을 지급받은 뒤 각자 자리에 앉아 오후 2시부터 시작된 드래프트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홀에 TV가 없어 앞쪽에 노트북 한 대를 켰지만, 각자 가지고 온 태블릿PC와 스마트폰을 켜고 호명의 순간을 기다렸다.

박준영은 일찌감치 한화 1라운드 지명 유력 후보로 거론돼 왔지만 “긴장된다”면서 “뽑히고 나면 펄쩍펄쩍 뛸 것 같다”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곧바로 최우선권이 있는 한화의 서한규 스카우트가 “한화 이글스 1라운드 발표하겠습니다. 세광고등학교 투수 박준영!”이라고 가장 먼저 호명했다.

동료들이 박수를 치며 축하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박준영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손을 벌벌 떨며 얼굴을 감싸 쥐었다. 박준영은 곧바로 일어나 동료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전한 뒤 “아~ 다행이다. 지명해주셔서 너무 기뻤고 1순위라는 게 쉬운 게 아닌데 너무 감사드린다. 부모님과 감독님,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며 감격을 주체하지 못했다.

다음에 SSG가 지명한 신헌민은 청소년 대표팀에 없었다. 이어 1라운드 3순위 삼성이 김영웅(물금고 유격수)을 호명했다. 역시 박수가 터져나왔고, 김영웅 역시 동료들에게 감사의 절을 한 뒤 “좋은 구단에 뽑혀 가지고 너무 영광이고 앞으로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감격 어린 표정을 지었다. 특히 경남 양산의 물금고 출신으로 최초의 프로 지명 선수라는 역사를 썼기에 기쁨은 더했다.

곧이어 롯데에 1라운드 지명된 조세진(서울고 외야수)은 “전혀 예상도 안 하고 있던 순간에 지명돼서 놀랐다. 아직까지도 실감이 안 된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고, 각각 KIA, 키움, LG에 1라운드 선택된 최지민(강릉고 투수)과 박찬혁(북일고 외야수), 김주완(경남고 투수)은 하나 같이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뽑혀서 기쁘다”,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열심히 해서 꼭 필요한 선수가 되겠다”며 감격스러워했다.

▲ 청소년 대표팀 선수들이 13일 대구 더 팔래스 호텔에서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으로 신인드래프트 2차지명을 지켜보고 있다. 맨 오른쪽은 SSG에 1차지명된 윤태현으로 쌍둥이 동생 윤태호가 5라운드에 두산에 지명되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윤태현 옆으로 조세진, 이재현, 박찬혁, 최지민 등이 앉아 있다. ⓒ대구, 이재국 기자

순번이 이어지는 와중에 5라운드에 두산에서 “인천고 투수 윤태호”라고 발표하자 쌍둥이 형 윤태현(SSG 1차지명)은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과거 OB 베어스(현 두산) 원년 멤버로 구천서-구재서 쌍둥이 형제가 같은 팀에서 활약한 적은 있지만 신인 지명으로 쌍둥이 형제가 프로 무대에 들어가는 것은 이례적. 2019년 2차 3라운드에서 SK와 NC에 각각 지명된 최재성-최재익 이란성 쌍둥이 형제에 이어 KBO 역사상 두 번째다.

윤태현은 “아빠, 엄마가 전화를 안 받으신다. 다른 데 전화하고 있는 모양이다”며 웃더니 “태호가 부상으로 1~2학년 때 많이 보여주지 못해 9~10라운드에서라도 불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5라운드 순번에서 호명될 줄은 정말 몰랐다. 엄마 아빠가 더 좋아하실 것 같다”며 웃었다.

청소년 대표팀에 선발된 만큼 모두들 고교 무대에서는 최고의 기량을 갖춘 선수들. 당연히 프로구단에 모두 지명돼야하지만, 과거 사례를 보면 종종 청소년 대표팀이 소집된 가운데 1~2명씩 호명되지 않아 어색한 분위기가 만들어지곤 했다.

대표적인 선수가 김현수(LG 트윈스)다. 2005년 인천에서 제6회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 열리면서 청소년대표팀에 소집된 신일고 3학년 김현수는 프로 구단의 외면을 받았다. 당시 류현진을 비롯해 2차지명 선수들의 이름이 줄줄이 불렸지만 김현수의 이름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김현수 외에 지명을 받지 못한 선수는 안산공고 2학년으로 대회에 참가한 김광현뿐이었다.

▲ 부산고 외야수 최원영은 2차지명 내내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면서 자신의 이름이 불려지기를 기다렸다. 6라운드에 LG가 지명했다. 왼쪽 김주완(LG 1라운드 지명 투수)과 오른쪽 허인서(한화 2라운드 지명 포수)는 호명 순간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스포츠타임
그런 전례들이 있었기에 모두들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청소년대표팀에 합류한 몇몇의 이름도 계속 불려지지 않았다.

모두들 축하와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가운데, 키는 작지만 빠른 발을 바탕으로 공수주에서 다부진 야구를 하는 부산고 외야수 최원영은 드래프트 내내 두 손을 모아 눈을 감은 채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여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러더니 6라운드에서 LG가 호명했다. 최원영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는 “뽑힌 걸로 만족하고 있고, 더 열심히 해서 최고의 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남아 있는 선수는 배명고 유격수 김태윤과 배재고 포수 김성우. 7라운드로 넘어간 상황에서 2순위의 SSG가 김태윤의 이름을 불렀다. 김태윤은 “진짜 되자마자 바로 부모님 생각부터 났다”며 십년감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7라운드 7순위의 LG가 마침내 김성우를 호명했다. 김성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하늘을 쳐다보면서 한숨을 쉬며 한 바퀴 돌았다. 마음을 진정시킨 김성우는 “옆에 태윤이도 되고 저만 안 되고 있어서...”라며 말을 잇지 못하더니 “살면서 가장 긴장 됐는데 지명돼서 좋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 청소년 대표팀 선수들은 자신의 이름이 이미 호명됐지만 자리를 뜨지 않고 동료들의 지명 순간을 기다려준 뒤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왼쪽부터 박영현, 한태양, 심준석, 김주완, 최원영, 김영웅, 허인서. 내년 시즌 최대어 투수 덕수고 2학년 심준석은 학교 선배 한태양이 롯데에 지명되자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오른쪽으로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은 김도영과 문동주가 보인다. 이들은 청소년 대표팀에 이어 U-23 대표팀에 선발돼 먼저 합숙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대구, 이재국 기자
자신은 이미 지명됐지만 자리를 뜨지 않고 끝까지 지켜보던 청소년대표팀 동료들도 환호했다. 이날 가장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표정 관리를 하던 다른 선수들도 그제야 모두들 신이 난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올해는 청소년 대표팀 선수 중 미지명 선수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기에 최재호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도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한편, U-18 청소년 대표팀은 이번에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 출전하지 못하지만 U-23 세계야구선수권대회는 오는 23일부터 10월 2일까지 멕시코에서 개최된다. 청소년 대표팀은 15일 대구시민운동장야구장에서 U-23 대표팀과 평가전을 치르며 스파링 파트너가 돼주기로 했다. 청소년 대표팀 중에 광주진흥고 우완투수 문동주(한화 1차지명)와 선린인터넷고 좌완투수 조원태(LG 1차지명), 광주동성고 유격수 김도영(KIA 1차지명), 인찬고 잠수함투수 윤태현(SSG 1차지명)은 U-23 대표팀에도 선발돼 성인 대표팀 선수들과 손발을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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