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장하는 리버풀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맨시티 ⓒ연합뉴스/AP
[스포티비뉴스=유현태 기자] 존중심 속에 경쟁심. 맨체스터시티는 축구가 멋진 이유를 잘 보여줬다.

가드 오브 아너(Guard of Honour). 시즌 말미 우승을 확정 지은 팀이 경기장에 입장할 때, 상대 팀이 입장 통로 옆에 도열해 박수를 보내는 것을 말한다. 한 시즌을 성공적으로 보낸 팀을 위한 축하의 의미가 담긴 전통이다. 

하지만 두 팀의 라이벌 관계가 치열하다면 어떨까. 라이벌을 향해 기꺼이 박수를 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까이는 2017-18시즌 라리가에서 FC바르셀로나가 우승을 차지했지만, 레알마드리드가 가드 오브 아너를 거부한 예도 있다. 경쟁심이 지나치게 큰 탓이다.

2019-20시즌 프리미어리그 32라운드의 마지막을 장식한 경기에 관심이 쏠린 이유다. 주인공은 맨체스터시티와 리버풀이었다. 두 팀은 3일(한국 시간) 영국 맨체스터 에티하드스타디움에서 맞대결을 펼쳤다. 

리버풀은 이미 31라운드까지 승점 86점을 쌓으면서, 맨시티(63점)를 따돌리고 우승을 확정했다. 맨시티와 리버풀은 지난 몇 시즌 동안 가장 치열하게 순위 싸움을 벌였는데, 우승 확정 직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화제가 됐다. '맨시티가 리버풀을 위해 가드 오브 아너를 할까?'

맨시티는 기꺼이 리버풀을 축하하기로 했다. 영국 공영 매체 BBC와 인터뷰에서 주제프 과르디올라 감독은 "리버풀이 우리 홈 경기장에 오면 환대할 것"이라며 가드 오브 아너를 하겠다고 공언했다.

디펜딩 챔피언이 자신의 자리를 빼앗은 이를 향해 축하를 보냈다. 맨체스터시티는 2017-18시즌, 2018-19시즌 연속으로 프리미어리그 왕좌에 앉았다. 맨시티는 지난 시즌에 승점 1점 차이로 바로 그 리버풀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럼에도 맨시티는 리버풀을 박수로 환영했다. 코로나19로 3개월이나 쉰 뒤 재개된 리그. 그리고 무관중 경기로 텅 빈 경기장. 우승을 차지한 직후 치르는 리버풀의 경기는 쓸쓸할 수 있었지만, 맨시티의 환대 덕분에 침묵을 조금이나마 털어낼 수 있었다.

▲ 선제골을 넣는 더 브라위너(왼쪽), 맨시티는 리버풀을 난타했다. ⓒ연합뉴스/AP

존중심이 전부였다면 조금 뻔한 이야기였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맨시티는 리버풀을 존중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다음 시즌에도 4개 대회에서 우승을 다툴 팀에 대한 경쟁심을 잊지 않았다.

맨시티는 리버풀을 4-0으로 난타했다. 공격진부터 강력하게 압박을 펼쳤고, 수비진은 1골도 주지 않겠다는 듯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번 시즌 우승을 내주긴 했지만, 맞대결 승리로 자존심은 세우겠다는 뜻이 읽혔다.

특히 라힘 스털링의 활약이 대단했다. 그는 2015년 여름 리버풀을 떠나 맨시티로 이적하면서 리버풀 팬들에겐 '배신자'라고 취급받는다. 복잡미묘한 감정을 느꼈을 스털링은 혼자 1득점을 포함해 3골에 관여하면서 맹활약했다. 역시 친정 팀을 향한 경쟁심을 잊지 않은 결과였을 터.

맨시티는 우승 팀에 대한 예우와 함께, 강력한 승리욕을 드러냈다. 우승은 놓쳤다지만 정말 멋진 2위 팀이었다.

리버풀과 맨시티, 그리고 위르겐 클롭 감독과 주제프 과르디올라 감독은 늘 치열하게 싸운다. 승패는 매번 뚜껑을 열어볼 때까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리고 치열하게 싸웠기에 후회는 없다. 그저 결과를 받아들이고 다음을 준비할 뿐이다. 일방적인 경기에 리버풀의 '태도 논란'이 불거졌지만 두 팀 감독은 이를 모두 부정했다.

승장 주제프 과르디올라 감독은 "가드 오버 아너를 지켜봤다.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봤다. 그들은 심지어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집중했기 때문이다. 리버풀은 이번 주에 맥주를 많이 마셨다. 하지만 이곳에 올 때 피 속에는 맥주가 없었다"고 말했다.

위르겐 클롭 감독도 "우리 선수들의 태도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얼마든지 이야기하라"면서도 "하지만 리버풀 선수들은 제대로 경기에 임했다"라고 옹호했다.

스포츠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이것 아닐까. 스포츠는 경쟁심을 기본으로 한다. 하지만 승리가 모든 것을 말하진 않는다. 상대에 대한 존중, 그리고 결과에 대한 깔끔한 승복이 스포츠를 아름답게 만든다. 그리고 나보다 나은 결과를 낸 이에겐 축하를 보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그 이면엔 더 잘하고 싶다는 경쟁심도 잃지 않아야 한다. 

우승을 놓치고 승리한 맨시티도, 우승을 거머쥐고도 굴욕을 맛 본 리버풀도, 다음 맞대결에선 칼을 갈고 나설 것이다. 두 팀의 다음 맞대결도 가슴 설레며 기다리게 될 것이다.

스포티비뉴스=유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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