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 한일월드컵이 남긴 유산. 이들은 현재 한국 축구 행정, 경기, 문화의 중심에 있다. 사진은 스페인과 8강 승부차기에서 이기고 4강에 오르자 환호하는 선수들. ⓒ대한축구협회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정말 바쁘세요. 아마 행정이란 게 이런 거구나 싶을 겁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움츠렸던 축구는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디비전 시스템 구축을 위해 출범한 K3, 4리그나 생활 축구 K5~7 리그는 일단 출항해 목적지를 향하고 있다. 물론 프로와 아마추어 최강을 가리는 FA컵에서 심판 판정 문제로 화성FC와 대전 코레일이 몸싸움을 벌이는 시비가 붙어 '사회적 거리 두기'가 무색하게 됐지만, 대한축구협회가 강력한 징계를 예고해 두고 볼 일이다. 

FA컵의 재미는 하부리그 팀이 상부리그 팀을 이기는 '언더독의 반란'에 있다. 향후 통합 디비전 시스템이 완성되면 FA컵의 권위는 더 격상되게 된다. 정몽규(58) 축구협회 회장이 완전한 승강제에 목을 매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 그렇다.

정 회장의 작품 완성에는 '2002 한일월드컵 주역' 중 한 명인 홍명보(51) 전무이사가 함께하고 있다. 한국 축구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전설이다. 현역 시절 대표팀 주장으로 카리스마를 풍기면서 한국 축구 현안이 있으면 신중함을 보이면서도 필요하면 강한 의견 개진을 마다치 않았다.

그는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혜택을 받은 인물이다. 2002 월드컵 주역은 어디를 가나 VIP 대접을 받았다. 매년 6월만 되면 스포츠 채널에서 두 손을 들고 환호하며 4강 진출을 기뻐하는 그를 보는 것은 어색한 일이 아니다. 사석에서 그를 만나다 보면 '선수' 홍명보를 알아보고 사인을 청하는 대중이 여전히 많은 것은 그가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홍 전무 역시 하부리그 활성화, 풀뿌리 축구 강화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동의하고 있다. 20세 이하(U-20), 올림픽, A대표팀 감독을 거치며 현장 경험을 쌓은 뒤 다소 늦었지만, 2017년 11월 전무 선임 후 크고 작은 일을 해결하며 성장 중이다.

▲ 2002 한일월드컵 주역 황선홍, 홍명보(왼쪽부터)는 대전 하나시티즌과 대한축구협회 행정을 책임지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축구협회가 원하는 하부리그 활성화 목표에는 한일월드컵이라는 뿌리가 자리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한일월드컵을 기점으로 축구전용구장 건립 등 인프라 구축이 이뤄지면서 우리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처럼 동네 축구 스타가 탄생 가능하다는 의식이 심어졌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하부리그 팀이 상부리그 팀을 이겨 화제가 되는 일이 서서히 만들어지고 있다.

물론 인프라 발전은 아직도 멀었다. 명색이 프로팀이지만, 경기가 끝나면 곧바로 일반인들이 들어와 운동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장기 임대는 스포츠산업진흥법이 있어도 여러 이해관계가 엮여 해결이 쉽지 않다. K리그가 상업적인 리그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 그렇다.

학교 운동장 다수는 여전히 맨땅인 곳이 많다. 사용도 쉽지 않다. 일반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운동장도 대관 예약이 빡빡해 눈치를 보기 다반사다. 직업 축구 선수와 취미형 선수 사이의 인식 차이도 존재한다. 학원 축구, 프로 산하 유스팀, 일반 클럽 축구 사이 다른 이해관계도 잘 묶어야 한다. 풀어야 할 문제가 산적하다는 뜻이다. 홍 전무는 문화체육관광부, 교육부, 행정안전부 등 유관 기관을 꾸준하게 출입하며 축구계의 입장을 전달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홍 전무가 현실 문제를 풀고 있다면 박지성(39) 전 대한축구협회 유스전략본부장은 실무를 바탕으로 이론을 무장 중이다. 그가 얼마나 더 공부해 어떤 길을 걸어갈 것인지는 미지수지만, 적어도 한국 축구 발전이라는 목표를 향하고 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쌓은 국제적인 인맥이나 학원 축구 출신으로 한국 축구의 문제점을 몸으로 잘 파악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대감은 더 커진다.

최근 만난 축구협회 한 일선 직원은 "진짜 미안한 이야기지만, 정 회장이 홍 전무를 선임할 당시 협회 임직원들은 의심이 많았다. 유명세야 있다지만, 실제 행정을 하면 과연 얼마나 할까 싶었다. 선수 생활과 행정은 전혀 다른 영역이기 때문이다"라고 회상했다.

이 직원은 "홍 전무는 대중적 인지도가 있어 유관 기관을 가면 문제 해결에 조금은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정말 바쁘다. 그런데 소위 얼굴로만 행정을 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문제를 파악하고 유관 기관에 가서 설득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다. 그 스스로도 행정이라는 것이 이런 거구나 싶을 것이다. 물론 아직 더 지켜봐야 한다. 축구계가 풀어야 하는 문제는 끝이 없어 그렇다"라고 전했다.

다른 직원은 "보통 선수 출신 임원이 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관두는 '계약직'처럼 느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홍 전무는 달랐다. 행정은 행정가만 해야 한다는 편견을 깼다. 오히려 협회 직원들 스스로 '선수 출신이 무슨 행정을 하나'라는 편견을 지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굳이 홍 전무가 아닌 다른 임직원들도 마찬가지다. 오래 일하는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라며 외풍에 휘말려 '대승적'으로 관두는 일은 보고 싶지 않다는 뜻을 밝혔다.  

▲ 이탈리아전에서 골든골을 넣고 환호하는 안정환. 예능한 익숙한 안정환의 그라운드 귀환은 언제 이루어질까. ⓒ대한축구협회

두 인물이 행정의 실무와 이론을 알아가고 있다면 최용수(47) FC서울, 황선홍(52) 대전 하나시티즌 감독 중심으로 김남일(43) 성남FC, 설기현(41) 경남FC, 김태영(50) 천안시청 감독과 최태욱(39) A대표팀 코치, 이천수(39) 인천 유나이티드 전력강화실장 등은 인재 발굴에 열중하고 있다. 최, 황 감독은 어느 정도 지도자 경험을 쌓았고 다른 감독들은 이제 출발점에 올랐다.

이들은 자신들의 현역 시절 활약에 고무, 축구계에 입문한 제자들을 지도하고 있다. 물론 최근 조기 유학으로 좋은 자원이 해외에서 성장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지만, 그래도 가능성 있는 자원들은 여전히 국내 교육을 바탕으로 자라고 있다. 지도자에 입문한 이들은 점점 투자 위축으로 좁아지는 국내 시장에서 파이를 키워내야 하는 책임을 어깨에 지고 있다.

'원외(?)'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영표(43)나 송종국(41) 김병지(50), 안정환(44) 등 최근 예능프로그램이나 교양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이들의 미래도 여전히 기대되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는 '해박한 달변가' 이영표와 '영원한 테리우스' 안정환의 행보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이운재(47), 최은성(49), 이민성(47), 최진철(49), 윤정환(47), 이을용(45), 차두리(40), 최성용(45), 현영민(41) 등 지도자 생활을 이어가거나 해외에서 지휘봉을 잡고 있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쌓은 경험은 분명 한국 축구 행정과 인프라, 경기력 발전에 활용돼야 한다. 강요하기는 어렵지만, 팬들에게 받았던 사랑을 환원하는 차원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유상철(49)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은 췌장암과 싸우고 있다. 멀티플레이어 유상철이야말로 가진 지식과 기술을 반드시 축구계에 되돌려줘야 한다. 이는 국민의 명령이다. 현역 시절에나 지도자 입문 후에도 그대로였던 승리욕을 앞세워 병마와 끝까지 싸워 이기기를 기대한다.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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