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김호정.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진짜 '프랑스 여자' 같다." 영화 '프랑스 여자'(감독 김희정)의 주인공 김호정(52)를 두고 다들 그랬다. 직접 쓴 시나리오를 그녀에게 건넨 김희정 감독도, 영화를 본 관객들도. 심지어 봉준호 감독은 난생 처음 프랑스어를 배워 연기한 그녀를 두고 '불어 하지 않느냐' 착각했단다.

배우와 영화 속 인물이 합일하는 듯한 영화의 마법. 그건 배우의 기운을 제대로 살린 절묘한 캐스팅 덕일 수도 있고, 진짜처럼 인물을 그려낸 배우의 연기력 덕분일 수도, 있다. 영화 '프랑스 여자'의 마법 가운데 배우 김호정이 있다.

1991년 연극배우로 데뷔, 올해 30년차가 된 김호정은 어떤 캐릭터라도 제 것처럼 살아내는 배테랑 배우다.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2000), 문승욱 감독의 '나비'(2001), 임권택 감독의 '화장'(2014), 신수원 감독이 '마돈나(2015) 등 뚜렷한 색채를 지닌 감독들이 앞다퉈 그녀를 찾은 건 우연이 아니다. '검법남녀'(2018), '아스달 연대기'(2019), '하이에나'(2000) 등 브라운관에서도 최근 활약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 영화 '프랑스 여자' 포스터.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프랑스 여자'는 촬영 2년 만에 관객을 만난 신작. 김호정은 연극배우를 꿈꾸며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지만 좌절하고 프랑스 남자와 결혼해 정착한 여자 미라 역을 맡았다. 20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옛 친구들과 재회한 그녀의 이야기가 현재와 과거,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며 펼쳐진다. 처음부터 김호정을 염두에 뒀던 감독은 예산이 큰 영화가 아니라 소속사에 시나리오를 보냈다간 전달도 되지 않을까 싶어 번호를 수소문한 끝에 그녀의 오피스텔로 찾아와 직접 시나리오를 건넸다. 2017년 겨울의 일이다.

"혹시 거절해야하나 했는데, 읽으며 너무 흥미로웠어요. 다만 '이렇게 연극 이야기를 주주장창 떠들면 괜찮아요?' 했는데 괜찮대요. 마치 영화를 다 보고 정리한 듯 쫙 펼쳐졌다가 탁 끝나는 시나리오였어요. 하겠다고 흔쾌히 이야기했죠…. 감독님은 1993년도에 제 연극을 봤대요. 이 역할에선 철저하게 생소하고 낯선 이미지로 보이고 싶다고 하셨고. 제 이미지가 낯설어서 그런게 아닌가 하지만, 그런 '낯설음'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그 인물로 들어가고, 보는 관객이 그리로 들어가서 본다면 성공한거죠."

감독은 "호정씨가 그런 사람이니까 호정씨가 하면 돼요"라며 그녀에게 많은 걸 맡겼다 한다. 김호정이 가장 먼저 돌입한 건 프랑스어 레슨. 선생님에게 배워 대사를 달달 외웠지만, 그녀의 프랑스어를 들은 프랑스인 남편 역 배우는 난감한 기색이었단다. 이건 안된다 싶어 김호정은 아예 오피스넬 위층에 방을 빌린 상대 배우와 매일 대사 공부를 했다. 티셔츠와 바지, 심플한 슬립 등 자신의 옷을 그대로 가져다 상황에 맞춰 입었다. '프랑스 여자'와 김호정 사이의 경계가 그렇게 더 흐릿해졌다. 

▲ 배우 김호정.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그녀와 '프랑스 여자' 미라는 공감대도 많았다. 김호정은 "연극의 꿈을 안고 간 데선 나의 젊었을 때가 충분히 느껴졌다"며 "자기 뜻을 못 이루고 통역사가 돼서 경계에서 지켜보는데, 너무나 저 같았다"고 털어놨다. 과거 외국 여행에서 2~3개월씩 집을 빌려 살았던 경험도 떠올렸다. 동양인 얼굴로 해외에서 살면 늘 생소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긴장한 채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중년의 여성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이야기 자체로도 너무나 반갑고 욕심이 났지만 그녀는 '절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나리오를 받았던 시점이 제가 영화와 연극을 하다가 TV로 오려던 시점이에요. 엄마처럼, 우리 또래가 하는 역할이 정해져 있잖아요. 제가 어쨌든 엄마는 아니고,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시기에 이게 딱 온 거죠. 나의 위치나 이런 게 맞는 게 많고 공감하는 게 많아서 내 문제들을 표현하면 되겠구나 했어요. 한국배우들과 현실적으로 만나는 부분이 계속 있는데 '연기하지 말자' 생각했어요. 촉각을 곤두세우고 경계인으로 지켜보자고. 허구와 실제를 굳이 구분하지 말고 실제라고 받아들이며 반응하자고."

▲ 배우 김호정.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를 찍을 당시의 고민은 '프랑스 영화'를 하면서 다 털어낸 것 같다고 김호정은 털어놨다. 그녀의 정리는 단순했다. "어떤 역할이든, 망하든 피가 되든 살이 되든 주어진 기회에 감사하면서 해보자." 그렇게 '아스달 연대기'의 신비로운 씨족 어머니 초설이 탄생했고, '하이에나'의 권력욕 충만한 변호사 김민주가 나왔다. 차기작은 촬영을 마무리한 영화 '젊은이의 양지', 그리고 잠시 촬영을 쉬고 있는 '보고타'다. 앞으로도 그녀의 여정은 쭉 이어질 예정이다.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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