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 기간 부상과 싸웠던 이건욱은 건강한 몸과 함께 1군 진입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SK와이번스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SK는 매년 플로리다 베로비치 캠프가 끝날 때쯤 선수단과 현지 캠프 관계자들이 모여 회식을 진행한다. 그런데 베로비치에 세 번째 온 이건욱(25·SK)은 “지난 두 번은 회식에 참가하지 못했다”고 했다.

부상 때문이었다. 두 번 모두 불의의 부상으로 중도 귀국했다. 이건욱은 “베로비치에 와서 일주일을 넘겨본 적이 없다. 짐을 좀 풀려고 하면 다시 쌌다”고 씁쓸해했다. 그간 이 유망주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입단 직후 팔꿈치 수술을 받았던 이건욱은 발목, 시력 등 수차례 부상에 시달리며 잠재력을 꽃피우지 못하고 입대를 선택했다.

공익근무를 거치며 절치부심한 이건욱은 올해 회식에는 정상적으로 참가했다. 몸은 멀쩡했다. 이건욱은 “캠프 완주가 첫 목표였는데 처음으로 회식도 경험했다”고 웃었다. 몸이 받쳐주는 에이스 본능은 빛을 발한다. 3년 만의 첫 실전에도 불구하고 자체 연습경기와 최근 평가전에서 무실점 행진을 이어 가며 코칭스태프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다리가 후들거렸다”는 이건욱의 엄살과 다르게, 그는 마운드에서 누구보다 독한 눈빛으로 버티고 있었다. 

이건욱은 지난해 11월 캔버라 유망주캠프 당시까지만 해도 ‘베로비치 멤버’와 거리가 있었다. 베로비치에 극적으로 합류하게 된 시점에서도 ‘선발 후보’는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실적으로 경쟁자들을 추월하기 일보 직전이다. 이건욱은 “아무래도 코칭스태프에 첫 이미지를 심어주는 자리였다. 별 생각하지 않고 포수 미트만 보고 던진다는 생각으로 임했다”면서도 “1차 목표는 첫 연습경기 등판으로 끝났다”고 싱긋 웃었다.

공익근무 기간 등으로 공백이 길었던 만큼 이를 한 번에 채우기는 쉽지 않다. 고교 시절 9이닝을 밥 먹듯이 던졌던 이건욱은 “2이닝을 던지는 것도 힘들다. (이닝 중간마다) 한 번씩 쉬는 게 적응이 안 된다. 어깨가 다 식어서 올라가는 느낌이다. 안 하다가 하니까 힘들기는 하다”면서도 “생각대로 안 된 부분이 아쉬울 뿐, 중압감은 별로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이 정도 중압감은 이미 고교 시절부터 숱하게 경험했다. 남다른 심장은 여전히 살아있다.

다치지 않은 것 외에도 수확은 있었다. 몸쪽 승부를 즐겨하기 시작했다. 이건욱은 바깥쪽 구석을 꽉 채우는 라인 좋은 패스트볼과 우타자 바깥쪽 슬라이더에 장점이 있었다. 남들이 던지기 어려운 ‘길’로 이것을 던졌다. 고교 시절 뛰어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이유였다. 그러나 염경엽 감독은 여기에 ‘몸쪽’을 채워 넣으면 선발로도 성공할 수 있다고 봤다. 이건욱도 이 주문에 적응하는 단계다. 재능 덕분인지 습득도가 빠르다는 게 염 감독의 미소다.

원래 이건욱은 투구판의 3루 쪽을 밟고 던졌다. 입단 후에 1루로 바꿨는데 몸쪽 승부를 위해 다시 3루 쪽으로 옮겼다. 효과는 있다. 염 감독은 “우타자 몸쪽으로 공이 잘 들어간다. 제구가 나쁜 선수는 아니기 때문에 잘 들어가면 파울도 많이 유도할 수 있다”고 반겼다. 이건욱도 “몸쪽으로 던지기가 편해졌다”고 인정하면서 “공격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나는 엄청나게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가 아니다. 볼을 주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던진다”고 설명했다.

1차 목표를 달성한 이건욱은 2차 목표를 묻자 “지금은 그런 생각을 많이 하지 않는다”는 의외의 대답을 내놨다. 복귀 첫 해인 만큼 내용부터 차근차근 잡고 가겠다는 생각이다. 다만 이건욱은 “빠르게 승부를 봐서 싸운다는 느낌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지난달 27일(한국시간) NC와 연습경기 때도 25구 중 23개가 패스트볼 정면 승부였다. 그러면서 2이닝을 노히트 무실점으로 막았다.

원래 이건욱의 스타일이 그랬다. 몸만 건강하면 언제든지 되찾을 수 있는 야성이다. 그래서 몸을 항상 강조한다. 20대 중반치고는 많은 부상을 겪은 과거에서 느낀 게 많다. 그는 “다치지 말아야 한다. 항상 조심하고 있다. 쉬는 날에도 바깥에 잘 나가지 않는다”면서 “몸이 아프지만 않으면 괜찮을 것”이라고 2020년을 고대했다. 에이스 DNA가 드디어 아프지 않은 몸을 만났다. 당장은 더 채워넣어야 할 것이 있겠지만, 그 다음은 결과를 기대할 만하다.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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