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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인터뷰] "내 지식 100% 그분께 배운 것" 한국에 포백 가르친 베어벡, 강민수의 기억

한준 기자 hjh@spotvnews.co.kr 2019년 12월 03일 화요일
▲ 핌 베어벡 감독
▲ 국가대표 수비수로 활약했던 강민수

[스포티비뉴스=홍은동, 한준 기자] 2일 오후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만난 울산 현대 수비수 강민수(33)는 시상식이 아니라 초상집에 온 듯한 모습이었다. 하나원큐 2019 K리그 대상 베스트11 수비수 부문 후보에 오른 강민수는 "후보에 오른 것에 놀랐다. 축하해주려고 오려고 했다. 힘든 일이 있어서 만감이 교차하는 것 같다"고 했다.

강민수에겐 쉽지 않은 한 해였다. 2018시즌 울산의 주장으로 선임된 강민수는 2019시즌 윤영성과 불투이스의 가세로 주전 경쟁에서 밀렸다. 주장 완장은 자연스럽게 내려놓았다. 

하지만 강민수는 기어코 울산 안에서 자신의 입지를 되살렸다. 윤영선과 불투이스가 번갈아 다치면서 그라운드로 호출됐다. 리그 23경기에 뛰며 3골을 넣었다. 육탄 수비로 울산 골문을 사수했고, 강력한 리더십으로 선수들을 이끌었다. 귀중한 골도 넣었다.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시작한 시즌에, 시즌 최고의 수비수 후보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강민수는 자신의 처지보다 팀이 포항 스틸러스와 1일 최종전에 패해 준우승에 그친 상황에 대한 참담함이 더 컸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건 전혀 없었다. 팀이 우승하는 것만 생각했다. 저뿐 아니라 모든 선수들이 경기에 나가고 안나가고 중요하지 않고 팀의 목표만 생각했고, 팀이 우승하지 못한 것 한 가지만 아쉬웠다."

2013년 12월 1일의 악몽을 경험했던 강민수는 경기 전후로 그와 관련한 몇몇 이야기를 했다. 결국 악몽은 재현됐고, 강민수는 그저 또 다른 한 경기였을 뿐이라고 했다. 

팀적으로는 아픔이 컸지만, 시즌 초 은퇴까지 고민했던 강민수에게 올시즌은 역경을 딛고 일어난 해로 기억될 수 있다. 강민수는 경쟁을 불평하지 않고, 자신을 차분히 돌아봤다. 

"개인적으로는 힘들게 시작했지만, 울산 같은 구단은 언제나 선수 영입이 이뤄진다.  늘 경쟁해왔다. 선수 영입은 당연하다. 그 상황에서 좋은 선수가 경기에 나가는 것이다. 선수가 받아들일 부분이다. 시즌 내내 최선을 다했고, 그러면서 기회가 왔다. 선수로서 기본에 충실했다."

윤영선과 불투이스가 시즌 전반기 '불륜 콤비'로 위세를 보였으나, 둘의 부상 기간 강민수는 너끈히 그 공백을 메웠다. 오히려 둘이 부상에서 돌아온 뒤 후유증에 시달려 강민수가 그립다는 반응까지 나왔다. 30대 중반을 향하는 강민수가 아직 건재하다는, 아니 한층 노련하고 강해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 강민수 ⓒ한준 기자


"개인적으로 얘기하면, (건재하다는 것을 입증 했다는) 그런 생각도 분명 든다. 초반에 많이 힘든 상황에서, 오랜만에 (이렇게 긴 기간) 많이 출장을 안해봐서, 컨디션 관리 고민도 됐다. 운동량도 고민이 있었고. 착실하게 준비했고, 경기 나갈 때 편하게 생각하고 나간 게 괜찮았던 거 같다."

강민수가 이날 침울했던 이유는 또 있다. 그를 국가 대표 팀에 발탁해 2007년 AFC 아시안컵에서 주전으로 기용했던 핌 베어벡 전 감독이 최근 암 투병 끝에 별세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도 강민수는 목에 메었다.

"소식은 알고 있었는데, 막상 기사를 접하고 나서 생각이 많아졌다. (이)근호나 (김)창수랑 같이, 우리를 올림픽 대표팀에 뽑아주시고 국가대표팀까지 뽑아주신 감독님이라 셋이 얘기를 나눴다. 개인적으로 감사한 분이다. 프로에 처음 와서 어릴 때 대표팀에 발탁해주셔서 너무나 큰 전환점이 됐고. 내가 알고 있는 상식선에서 수비 조직에 대해 전혀 새로운 걸 배웠고, 포백을 그전까지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가 처음 배웠고, 지금까지 제가 가진 지식의 99%, 100%가 그때 배운 것이다. 그것으로 선수 생활을 해왔다. 너무 감사하고, 짠하고, 한동안 멍하게 있었다."

베어벡 감독은 거스 히딩크 감독을 보좌한 수석 코치로 2002년 한일 월드컵 한국 대표팀에 부임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는 딕 아드보카트 감독의 한국 축구 파악을 도운 수석코치로 다시 왔고, 그 뒤에는 직접 한국 대표팀과 올림픽팀 겸임 감독을 했다. 2007년 아시안컵에 4강의 성적을 냈으나 3득점 3실점으로 공격력이 미진한다는 비판 속에 사퇴했다. 당시 베어벡 감독은 김치우, 강민수, 김진규, 오범석 등 올림픽을 준비하던 어린 선수들로 대회를 치르며 그전까지 히딩크와 아드보카트도 실팩했던 포백 수비 조직을 완성시켰다.

베어벡 감독 부임 전까지 한국 축구는 대표팀과 프로팀 모두 스리백이 중심이었다. 이 시기 이후 포백을 쓰는 팀이 늘어났고, 포백을 이해하는 선수들이 늘어났다. 베어벡 감독은 대표팀에서뿐 아니라 각종 지도자 세미나를 통해 자신의 지도 철학과 방법론을 한국에 전수했다.

▲ 2019시즌 자신의 가치를 그라운드 위에서 입증한 강민수 ⓒ한국프로축구연맹


강민수는 "프로 생활하면서 스리백을 많이 했는데, 포백에 대한 확신이 내 스스로 없었다. 잘할 수 있다고 충분히 가능하다고, 널 테스트하는게 아니라 너가 잘하니까 경기에 나가고 장점이 있다고 자신감을 심어주셨다"며 자신이 포백에 적응하고, 수비 이해력을 갖출 수 있었던 배경이 베어벡 감독의 지도였다고 했다. 

"짧은 훈련 속에도 라인을 언제 어떻게 올릴지 언제 쳐져야 하는지 좌우로 움직일때 어느정도 당겨야 하는지, 확신이 없다면 경기장에서 순간적으로 나올 수 없는데 그런 자신을 주셨고, 선수 모두가 한 마음으로 움직여 잘 맞았다. 비슷한 또래들이라 잘해보자는 으샤으샤도 됐고. 당시 코치님이었던 홍명보 코치님께서도 많이 가르쳐 주시고 조언해주셔서 가능했다."

강민수는 그때 배운 노하우를 통해 적지 않은 나이인 지금도 수비 라인의 조율사로 수준급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다. 올해 울산과 계약이 끝나는 강민수는 2020시즌에도 프로 선수로 그라운드를 누비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올 시즌 초반에 좀 고민이 있었는데 경기 해보니 90분 뛰는데 문제가 없다고 생각이 들어서 선수 생활을 계속 할 생각이다. 힘에 부칠 때까지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일단 시즌이 끝나고 구단과 얘기하기로 했다. 시즌이 끝났으니까, 이제 에이전트가 얘기할 거 같다. 협상 결과에 따라서 가능성은 다 열려있다."

"개인적 각오는 울산이 올해는 실패했지만 더 많은 투자로 좋은 선수가 보강되고, 우승에 도전했으면 좋겠다. 올해 우승 못한 책임감이 크지만 지난 일이다.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 개인적 목표는 당연히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선수 본연의 마음으로 최선 다하고 준비하겠다."

스포티비뉴스=홍은동, 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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