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제공|영화사진진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제목만으로 마음을 치는 영화들이 있다. 비장한 한 문장의 제목을 내세운 이 영화도 그렇다. 영화의 주제이자 중요한 대사이기도 한 이 한마디는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위태로운 불안의 시대 그 울림은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회사에 몸 바친 지 7년, 하지만 이른바 '면벽' 근무라는 노골적인 퇴직 종용을 벼텨낸 회사원 정은(유다인)은 결국 지방 하청업체에 파견된다. 알아서 관두라는 해고 통지나 다름없다. 1년만 버티리라 이 악물고 출근했건만 그녀의 자리는 없다. 송전탑 보수 관리가 주업무인 하청업체도 그녀가 마땅치 않기는 마찬가지. 매일 팩소주를 들이키며 버티던 정은은 구제 방법을 알아보는 한편 현장업무를 자처하지만 철탑 위에 발 한 걸음 올리기가 쉽지 않다. 송전탑 수리공으로는 자식들 건사하기가 모자라 쓰리잡 알바를 뛰는 막내(오정세)가 그의 파트너가 된다.

영화는 극한의 상황에 내몰린 한 노동자의 처지를 담는다. 여성 사무직 노동자였던 정은은 직장에서 밀려 어느 하나 익숙지 않은 남성들의 세계, 위험천만한 현장에 내몰린다. 바라만 봐도 아찔한 철탑은 고소공포증과 트라우마가 더해져 한 걸음 올라가기조차 어렵다. 가만히 있으면 있는 대로 해고당하고, 애쓰면 애쓸수록 비웃음을 사는 처지. 심지어 나의 존재가 열심히 일하던 동료를 위협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기로 한다. 회사가 동료가 세상이 자신을 해고하더라도 자신만은 스스로를 놓지 않기로 한다.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정인이 처음으로 철탑에 오르는 장면이다. 카메라는 멈춰서 정인을 비춘다. 막내가 올려놓은 자동차키에 가까스로 손이 닿은 정인은 멈추지 않는다. 기어코 오르고 또 올라 화면 밖으로 나아간다. 정인의 가쁜 숨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영화는 정인이 철탑에 오르는 데 '성공'하거나 동료의 '인정'을 받는 해피엔딩을 향해 가지 않는다. 스스로의 '사람됨'을 입증하기 위한 그녀의 걸음은 마지막 엔딩과 맞물려 더욱 뭉클하게 다가온다.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는 단순하고도 풍성하다. 제목처럼 메시지를 향해 직진하지만, 여성과 남성, 원청과 하청, 노동자와 노동자의 관계부터 고용불안과 위험의 외주화까지 노동을 둘러싼 문제를 넓은 시선으로 설득력있게 담아낸다. 감전과 추락의 위험이 늘 도사리는 송전탑은 불안에 시달리는 정인이들의 처지 자체이기도 하다. 이를 담는 카메라는 퍽 단조롭지만, 그래서 생기는 강렬한 순간이 있다. 

▲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제공|영화사진진

배우들의 호연은 특히 큰 몫을 한다. 유다인은 믿음직한 배우다. 파리하지만 누구보다 단단하며 결코 만만찮은 여성인 정인을 놀랍도록 단단한 연기로 그려내며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를 이끈다. 개성 만점 연기로 어느덧 대세에 등극한 오정세는 차분하고 따뜻한 인물로도 묵직한 존재감을 드리운다.

지방 현장으로 부당 파견돼 치욕을 겪으면서도 결국 버텨낸 중년 사무직 여성의 이야기를 기사로 접하고 영화를 기획했다는 이태겸 감독은 "직업이란 생존이구나 하는 질문과 깨달음은 정서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가 스스로를 해고해야 하나 고민에 빠진 세상의 정인이들에게 한줌 응원이 될 수 있기를. '나, 다니엘 블레이크', '미안해요 리키'를 수입배급한 영화사진진이 배급과 투자를 맡았다.

1월 28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11분.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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