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퇴 기자회견에 나선 정조국 ⓒ한국프로축구연맹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임창만 영상 기자] "팬들에게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고 싶다."

'분유캄프' 정조국(36)이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정조국은 9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열었다. 시즌이 일찌감치 종료됐고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으며 은퇴를 알렸고 스포티비뉴스를 비롯해 일부 매체와도 은퇴 소감을 알린바 있다.

하지만, 원소속팀 제주 유나이티드가 K리그2(2부리그) 우승으로 K리그1에 승격하면서 정조국의 은퇴 기자회견을 준비했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시즌이 끝남과 동시에 바로 하기가 어려웠고 더 많은 취재진 앞에서 자신을 알리고 싶었던 정조국도 시간을 갖고 기다린 뒤 이날 은퇴를 알렸다.

2003년 안양LG를 통해 K리그에 데뷔한 정조국은 프랑스 오세르와 낭시를 거쳐 경찰청을 통해 병역 의무를 이행했다. 광주FC, 강원FC에서 30대를 보냈다. 올해 제주에 입단해 12경기에서 1골을 기록했다. K리그 통산 392경기 121골 29도움이다.

2003년 12골로 신인왕을 차지했고 2016년 20골로 득점왕과 최우수선수(MVP)를 동시에 차지했다. 우승팀이 아닌 곳에서 득점왕과 MVP를 차지했다는 점에서 더 놀라웠다. 신인상, MVP, 득점왕을 모두 경험한 경우는 정조국, 이동국, 신태용 3명에 불과하다.

정조국은 "축구선수 정조국은 떠나지만, 제2의 인생으로 지도자 정조국으로 멋지게 돌아올 수 있도록 하겠다"라며 지도자의 길을 정석대로 걷겠다고 전했다.

선수로서 월드컵에 나가지 못했던 것이 아쉬웠다는 정조국은 "A대표팀에만 가면 부상 당하고 괜찮은 것 같아서 (스태프가) 경기를 보러오면 망치고 제 스스로도 자만했다. 월드컵에 나가지 못했던 것도 감내해야 할 것 같다. 선수로서 나가지 못했던 것 지도자로 나가고 싶은 소망이 있다. 많이 겪어왔던 착오와 잘못된 것들을 경험을 바탕으로 준비하겠다"라고 말했다.

▲ 은퇴를 선언한 정조국 ⓒ한국프로축구연맹

*다음은 정조국과의 일문일답


-은퇴 심경은 어떤가

"이런 자리에서 그동안 많은 추억, 아픔도 있는 그라운드를 떠나게 됐는데 이것 또한 감사한 마음이다. 이런 자리를 통해서 그동안 많이 감사히 잘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어제 많은 생각을 했는데 어떤 말을 해야 하나 고민스러웠다. 응원해주신 팬이나 K리그 구성원, 팀 동료, 선배, 지도자분들께 감사하다. 축구선수 정조국은 떠나지만, 제2의 인생으로 지도자 정조국으로 멋지게 돌아올 수 있도록 하겠다."

-은퇴를 결심한 배경은

"가장 큰 계기는 일단 3~5개월 전부터 고민했다. 내려놓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매일 자기 전에 내려놓아야지 해놓고 일어나면 또 생각이 달라졌다. 힘든 시기를 겪을 때 저 자신을 너무 괴롭힌 것 같더라. 멘탈이 그랬다. 자신이 버티지 못하니 정말 내려 놓아야겠다는 생각을 수없이 반복했다. 지금 당장도 더 할까 하는 생각도 있지만, 많은 선수가 그런 생각을 하겠지만 내려놓는다는 것이 정말 힘들다. 가장 적당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 다음 단계를 가기 위한 좋은 시기라고 생각했다. 제주가 K리그2 우승으로 박수를 받으면서 제 의지로 내려놓게 됐다."

-은퇴 후 자연인으로 사는 느낌은 어떤가

"아직은 실감 나지 않는다. 선수 시절에는 이 시기가 휴가라 그렇다. 아내와 농담으로 내년 1월 월급이 들어오지 않아야 실감이 날 것 같다고 했다. 아버지 역할에 충실히 하고 있다. 몸이 힘들어서 오늘도 일찍 나왔다. 마음이 행복하고 여유로운 것이 사실이다. 동계훈련 준비하지 않아도 되니까 먹을 것 마음대로 먹는다. 1월 월급이 들어오지 않아야 '아! 백수구나' 싶을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상황들이 있나

"모든 장면이 소중하지만, 처음인 것 같다. 2003년 안양LG 유니폼을 입고 전남 드래곤즈 원정을 갔다. 그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마추어라고 생각했다. 속된 말로 씹어 먹을 줄 알았다. 어린 19살 청년이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당돌했다. 그때의 제가 없으면 지금의 저도 없다. 설레고 요즘 들어서 더 생각이 난다. 제2의 인생 준비의 원동력이 될 것 같다."

-K리그에서 신인왕, MVP, 득점왕 해봤는데 더 해보고 싶었던 것이 있나

"K리그는 해볼 것 다 해보고 상도 많이 받아봤지만, 아쉬운 것은 공격수니 더 많은 골을 넣을 수 있었는데 싶더라. 많이 놓친 기회도 있었다. 그런 기회 하나하나가 생각이 난다. 어쨌든 숫자, 기록으로 남는다. 그래서 아쉽지만, 그것 또한 제가 부족해서 그런 것 같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매 순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고 본다.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청소년 시절 특급 유망주였는데 A대표팀과 인연이 없었다

"선수로서 월드컵에 나가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A대표팀에만 가면 부상 당하고 괜찮은 것 같아서 (스태프가) 경기를 보러오면 망치고 제 스스로도 자만했다. 월드컵에 나가지 못했던 것도 감내해야 할 것 같다. 선수로서 나가지 못했던 것 지도자로 나가고 싶은 소망이 있다. 많이 겪어왔던 착오와 잘못된 것들을 경험을 바탕으로 준비하겠다."

-아내는 물론 아이들이 있는데 큰아들 태하가 무슨 말을 해줬나

"솔직히 가족을 생각하면서 좀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제가 힘들었을 때나 기뻤을 때 누구보다 제 편이 되어줬고 많은 힘이 돼줬다. 그 누구보다 제 아내가 많은 희생을 해줘서 지금이 있다고 본다. 축구 선수 이전에 인간 정조국은 결혼 전과 후로 나뉜다. 제가 지금까지 인생 살면서 잘한 선택은 결혼이라고 말한다. 너무나 고맙고 정말 미안했고 그 누구보다 더 많이 눈물을 흘렸던 아내에게 정말 고맙다고 하고 싶다. 멋지게 떠나고 싶었는데 가족 이야기 나오니 부끄럽지만, 많이 미안했던 것 같다. 앞으로 더 열심히 봉사하고 모시면서 살겠다. 아이들은 정말 좋아한다. 첫째도 많은 것을 봐왔고 지켜봐서 그동안 아빠가 수고를 많이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둘째도 좋다고 하고 셋째는 말을 하지 못한다. 몸은 힘들지만, 행복하게 보내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게 축구를 시킬 것인가

"아빠가 축구 선수였다는 것을 막내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막내만 보지 못했다. 아쉬워했기에 그렇다. 그래도 막내에게는 축구 선수가 아닌 지도자 정조국으로 멋진 모습을 보여주겠다. 아이들에게는 떳떳한 아빠였으면 좋겠다. 저도 많은 영광을 받았고 느꼈다. 그래서 큰아들로 인해 큰 모험, 도전하게 됐다. 친구들에게 소개하면서 '축구 선수 아빠 정조국'이라고 하더라. 존경하는 마음이면 되지 않을까 싶다."

-많은 지도자를 경험했는데 어떤 지도자를 롤모델로 삼으려고 하나

"어린 시절부터 많은 감독을 만났다. 내, 외국인 감독 모두 그렇다. 아직은 명확하게 어떤 감독이 되겠다는 생각은 어느 정도는 갖고 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감독님마다 장, 단점은 뚜렷하다. 그래서 장점들을 메모도 많이 했다. 그런 부분에 대해 저에 맞게 팀을 맡게 되면 구성에 맞게 장, 단점을 파악하고 기본적인 것은 저 역시 축구 선수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그라운드 안에서는 선수들이 하는 일이다. 첫 번째는 선수들의 마음을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마음을 살 자격이 되나, 인정받을 수 있나 알아야 한다. 옛날과 다르게 선수가 지도자를 평가하는 시대다. 정보도 많고 선수가 인정하는 감독, 지도자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배움과 경험이 필요하다. 급하게 마음먹으려고 하지 않겠다. 조언도 구해야 할 것 같다. 자신에게 더 많은 채찍질을 해야 한다."

-지금 지도자라면 데뷔 시절의 정조국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나

"정말 냉정하게 말해주고 싶다. 다른 선수에게는 하지 못하겠지만, 제게는 '너는 아직 프로가 아니다. 아마추어다'라고 하고 싶다. 팀 스포츠지만 나만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철부지였던 것 같다. 그런 친구를 프로 선수로 만들어준 제가 가장 존경하는 축구계 아버지 조광래 대구FC 대표이사에게 감사하다. 그분이 없었다면 따끔하게 말해주지 않았을 것 같다. 그분이 있기에 프로 선수 정조국이 있었다."

-예능 대신 지도자의 길을 확실하게 선언한 이유가 있는지

"솔직히 말하자면 예능이 제 성향에 맞지 않다, 못하는 것이다. 가장 큰 이유가 감히 예능, 방송 출연해서 지도자로 가는 길에 큰 도움이 없다고 본다. 나름대로 감독이라면 카리스마도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 부분에서 조금은 가볍게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보수적이라서 그런 것 같다. 지도자 생각을 많이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가장 잘하는 일, 할 수 있는 일,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 지도자가 매력적이라고 본다. 더 많은 배움과 경험이 있어야 하지만, 꼭 해서 받았던 사랑을 돌려드리고 좋은 길을 가야 한다고 본다."

-아내와 은퇴를 어떻게 상의했나

"너무 힘들다고 의사를 표현했었다. 그러자 "그럼 그만둬"라고 하더라. 저는 관두고 싶은데 아내는 아쉬워했던 것이 사실이다. 사담이지만, 공로상 받고 소감을 이야기할 당시 혼자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오열을 했다고 하더라. 축구 선수 정조국의 큰 팬인 아내가 아쉬워한다. 그래도 제 의사를 존중해주고 이해해줘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더 잘해야 한다고 본다."

-남기일 감독과는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남 감독님은 감독 이전에 축구 선배로 조언을 많이 해줬다. 감독 역할보다 축구 선배로서 그동안 밟아왔다. 전부를 알지는 못해도 이해해주고 공감을 해줬다. 내려놓는 법을 찍어주셨다. 대화로 마음이 편해졌다. '힘든 고민이었을 텐데 찾아와줘 고맙다'라고 하더라. 방향성도 잡아줬다. 마지막 길을 조 감독님이 처음을 만들어줬다는 마지막의 정조국이 박수받고 떠날 수 있게 해줬다."

-2016년 득점왕에 오른 이후 4년 연속 모두 외국인 선수가 차지하고 있는데

"2003년 데뷔 후 외국인 선수들과 엄청나게 경쟁했다. 저렇게 비싼 돈을 주면서 왜 바꾸나. 돈 조금 받는 저를 쓰며 키워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회 주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많이 알았던 것이 외국인 선수들과 싸우면서 제가 정말 많이 성장했다고 본다. 그런 친구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그들이 없었으면 이 정도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프로 선수로서 경쟁은 당연했는데 그것을 당연하다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한국 축구는 공격수가 고질적인 문제고 선수가 없다고 하는데 올해도 그렇고 작년에도 국내 정통 공격수가 없는 것이 안타깝더라. 후배들도 최선을 다하는데 감히 선배로서 하고 싶은 말은 다른 친구들을 닮으려 하지 말고 내가 가진 것이 이 정도의 역량인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리오넬 메시, 손흥민, 이동국이 될 수 없는 것 아닌가. 자기만의 특징, 무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자기만의 것을 정진하고 외국인 선수들과 싸우고 하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대로 생각하면 지도자의 역할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프랑스 리그에서의 두 시즌 아쉽지 않았나. 당시로 돌아간다면?

"저 나름대로는 최선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의 제가 없었다면, 월드컵에 나가지 못했던 것 이상으로 아쉬웠을 것이다. 지금이야 중국, 중동 등 원하는 곳이 다양했지만 저는 오직 유럽 진출이 꿈이었다. 축구를 보는 시점이 인간 정조국으로 시야가 넓어진 것이 사실이다.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때의 저로 돌아간다고 해도 최선을 다했다고 본다. 평가는 제3자가 하는 것이지만, 최선 다하고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값진 경험이었다. 멋진 골도 넣었고 강력한 인상도 남겼었다. 그 이후 후배들이 프랑스 리그에서 잘하는 것 보니 뿌듯하더라. 지금 그때로 돌아가도 그 선택을 그대로 할 것 같다."

-유명 배우를 아내로 두고 살았던 축구 선수의 삶은 어떤가

"스타 부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싸우기도 하고 알콩달콩 재미있게 살고 있다. 다른 분들이 지켜보기에 좋은 영향력을 쌓으려고 한다. 우리 부부가 특별하고 그런 것은 없다. 저 역시 똑같이 아이들 보면서 재미있게 살려고 한다. 특별하기보다도 다른 부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어서 좋은 일을 하려고 한다. 다른 분들이 보기에 웃음이 나는 부부였으면 한다. 나름대로 아이가 셋이라 좋은 영향력, 세 명은 힘들더라. (이)동국이 형은 다섯 명인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안 되지 싶더라."

-2016년 가장 영광스러웠을 텐데 얼마나 노력했었나

"해피엔딩이었지만, 돌아가더라도 2015년 겨울에 그 선택(광주FC로 이적)을 할 수 있나 싶더라. 서울을 떠나야 하나 남아야 하나 싶었다. 지금 결정하라고 해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서울은 첫사랑이었다. 그렇지만, 저에게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필요했다. 아들 한마디에 도전했다. 축구 인생에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었다. 광주에 가서 잘못됐다면 이런 자리는 없었을 것이다. 조용히 선수 생활을 끝냈을 것이다. 그렇지만, 쫓기지 않으려 노력했다. 남 감독이 기다려줬고 믿어줬다. 타이밍도 잘 맞았고 운도 따랐다. 모든 부분이 잘됐고 감사하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모든 경력이 한순간에 무너지니 그렇다. 힘들고 어려우면 쫓긴다. 강박 관념에 쫓기는데 그렇지 않았으면 한다. 광주에 가서 첫 경기가 포항 스틸러스전이었는데 긴장했다. 세 시간 자고 경기에 나갔다. 그때 첫 경기가 긴장 많았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다. 서른셋에 MVP를 탔다고 말해주고는 한다. 젊은 선수들이 긍정적으로 했으면 한다."

-아들이 뭐라고 해서 도전을 결심했나

"왜 경기에 뛰지 않느냐고 물어보더라. 주변인도 아내도 모두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변명해야 하는데 할 말이 없었다. 뒤돌아서서 아빠로서 정말 창피했다.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많은 결심이 섰던 것이 사실이다."

-염기훈, 이근호 등 또래 동료들이 아직 있는데 

"(염)기훈이 형은 가까운 선배다. 조언보다는 선수 생활을 더욱더 마무리를 잘했으면 한다. 어떻게 내려오느냐도 중요하다. 기훈이 형은 앞으로 현역 생활을 할 날이 더 있을 것이다. 잘 내려 놓고 몸과 마음 모두 다치지 않고 내려놓았으면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골은 언제인가

"데뷔골이다. K리그 데뷔골이 의미가 있었던 것이 정말 큰 기대를 받고 당차게 프로에 도전했는데 와보니 아무것도 아니더라. 정말 어려웠다. 좋은 선수가 많았고 힘들었다. 10경기 넘게 골을 넣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고서 넣는데 제주 유나이티드, 그러니까 옛날 부천SK다. 마에조노가 페널티킥 키커였는데 무조건 넣어야겠다 싶어서 벤치에 보면서 제가 차겠다고 했다. 그 골이 없었으면 어려웠을 것이다. 12골을 넣게 됐는데 데뷔골이다. 경기 하이라이트 만들면 멋진 골이 나온다. 청소년대표 시절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중국을 상대로 넣은 골이다. 멋있었다. 축구 선수 정조국을 기억할 때 그 골을 떠올린다."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 임창만 영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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