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진각 전망 대해서 축구와 평화를 놓고 열린 토크 콘서트. 박문성(맨 왼쪽) 해설위원회 사회로 이을용, 곽윤기, 안정환, 황선홍, 최유리, 김병지, 윽박, 김현송, 최용수, 이영표(왼쪽부터) 등이 페널로 나서 대화를 나눴다.


[스포티비뉴스=파주, 이성필 기자] "이곳은 휴전선에서 남쪽으로 7km 떨어진 지점, 남북 분단이라는 한국의 비극적인 현실을 확인하는 장소 임진각입니다."

12일 경기도 파주 임진각 전망대, 철책 너머의 북한을 바라보던 여행객들은 빨간,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평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무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도 그럴 것이 철마가 멈춘 곳에서 이념도 사상도 상관없은 스포츠, 그중에서도 남북 교류의 상징인 축구를 한다는 것으로도 놀라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재명 경기도 지사가 공을 들이는 스포츠를 통한 남북 교류와 화해 분위기 조성에도 맞는 이벤트였다. 

마치 태극기의 '태극 문양'처럼 보였던 무리는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들인 황선홍, 최용수, 이을용, 안정환, 이영표에 곽윤기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최유리 여자 축구대표팀 선수와 유튜버 윽박에 평양에서 여자 축구 선수를 했다가 탈북한 김현송 씨였다.

이들은 경기도가 주최한 '경기도 DMZ 평화 월드컵'에 참가해 입으로 평화의 가치를 나눴고 족구와 풋살로 통일의 염원을 몸으로 표현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상황이 이어지고 있어서 온라인 비대면 행사로 열렸지만, 현장을 찾았다가 우연히 온 팬들은 진지하게 행사를 지켜봤다.

임진각에 도착해 행사를 기다리던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임진각에는 처음 와봤다며 생소한 장소라고 입을 모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임진각으로 오는 길에 파주 축구대표팀트레이닝센터(파주NFC)가 북한과 가장 가까운 장소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곤돌라를 타고 비무장지대로 잠시 넘어갔던 이들은 기념 촬영을 하며 평화의 의미를 되새겼다. '반지의 제왕' 안정환은 "전쟁은 없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잘은 모르겠지만 사람이 서로 왜 죽이고 해코지를 해야 하는가. 마음이 아프다"라며 "(전쟁에서 희생한 분들이 있었기에) 쌀을 먹고 축구를 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잘 모르겠지만, 그분들께 감사하다. 여기(임진각)가 아름답다. 스위스도 가봤지만,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라며 감사함을 전했다.

'평화주의자' 이영표도 "우리나라 땅인데 마음대로 갈 수 없는 곳이 존재한다는 것이 아쉽다. 우연처럼 2차 세계대전 다큐멘터리를 봤다. 막연하게 전쟁이 무섭고 참혹함을 들어서 알고 있지만, 다큐를 보고 왜 평화가 간절하고 목숨을 잃는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우리가 여기에 와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새기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 2002 한일월드컵 전설들과 스포츠 스타들은 평화의 종 앞에서 풋살로 평화의 의미를 나눴다.

임진각으로 다시 이동해 전망대에서 열린 토크쇼에서는 서로 축구와 평화의 가치를 다시 나눴다. 자유의 다리와 통일의 다리가 같이 보이는 전망대에서 웃으면서도 진지한 대화가 오갔다.  

참석한 축구 선수 중 유일하게 1990년 남북 통일축구를 위해 평양에 가봤던 황선홍 전 대전 하나티시즌 감독은 "평양에서 하고 서울에서 경기했는데 그때는 아는 선수가 많았다. 지금은 너무 시간이 흘러서 많이 없어졌다. 그런 것이 유지가 되면 앞으로 통일하는 데 좋지 않을까 싶다"라며 남북 교류 협력에 있어 축구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종목임을 강조했다.

재미난 장면도 있었다. 북한에서 여자 축구를 했던 김현송 씨는 최용수 감독의 거짓말(?)에 속아 '을용타' 이을용 제주 유나이티드 코치를 향해 "정말 북한에서 태어나셨나"라고 물었다. 이 코치가 워낙 말라 늘 벌어지는 해프닝이다. 최 감독이 개성 태생이라고 했던 모양인지 김 씨가 "개성에서 태어나셨다던데…"라며 혼잣말을 했고 이를 들은 안정환이 "별명이 괴뢰군"이라고 덧붙여 좌중을 웃겼다.

하지만 축구가 평화에 기여하는가에 대한 본질에 대해서는 모두가 진지했다. 2005년 독일월드컵 아프리카 예선에서 코트디부아르가 본선 진출에 성공한 뒤 디디에 드로그바가 내전을 멈춰 달라고 호소해 1주일 동안 평화가 이어졌다는 전설부터 월드컵 예선에서 만나봤던 경험담이 쏟아졌다.

달변가가 된 안정환은 "스포츠는 국적이 없다. 특히 축구는 신사의 스포츠다. 한국과 북한이 경기를해도 축구로 끝날 뿐, 다른 외적인 것이 없다. 지구상 가장 재미있는 스포츠는 축구다. 목적이 없다. 승부를 내고 깔끔하게 끝난다. 패하면 패한 대로 이기면 이긴 대로 악수하고 끝난다"라며 남북 화해 협력에 축구가 기여할 힘이 있음을 강조했다.

평화의 종 앞 특설 경기장으로 옮겨 치른 족구와 풋살도 몸개그의 향연이었다. 시작 전 견학을 온 유엔(UN)사 소속 장교들과 기념 촬영을 하며 정말로 평화가 무엇인지 다시 확인했다. 경기도 관계자는 "평화에 애쓰는 이들과 함께 촬영했기 때문에 더 의미가 있었다"라고 전했다. 황 감독을 알아본 미군 장교는 통역을 통해 "전설인 것을 알고 있다.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다. 영광이다"라며 기념 촬영을 부탁했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표정은 상기 돼 있었다.

이어진 족구와 풋살에서는 최용수, 황선홍 두 백수 감독이 단연 돋보였다. 황 감독이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최 감독이 "늙었네. 안 되겠네"라며 놀렸다. 황 감독은 "아! 힘들다"라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골을 넣고 성공하는 것은 현역 시절 그대로였다. 경기장 밖 팬들이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전, 후반 10분짜리 풋살은 철책 없는 전쟁이었지만, 서로가 만족했다. 승부가 갈렸지만, 의미는 없었다.

경기도 관계자는 "한국 축구 전설들이 흔쾌히 이벤트의 취지에 동감하면서 행사에 나서줘 정말 감사했다. 임진각이 단순히 전쟁의 아픔과 평화를 염원하는 곳에서 벗어나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 남다른 의미가 있는 곳으로 남았으면 한다"라고 전했다.  


스포티비뉴스=파주, 이성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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