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퇴 기자회견에 나선 이동국 ⓒ전북 현대
▲ 2007년 당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미들즈브러에 입단했던 이동국, 오른쪽은 가레스 사우스게이트(현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전주, 이성필 기자 이강유 영상 기자] 정말 많은 기억을 안고 떠나는 이동국(41, 전북 현대)이다. 그중에서도 꿈에서도 항상 생각한다는 유럽 시절은 아쉬움 그 자체였다.

이동국은 2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열었다. 11월 1일 대구FC와 K리그1 27라운드 최종전이 그의 마지막 경기지만, 우승이 결정되기에 팀을 위해 미리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쁨과 고통, 환희와 좌절이 교차했던 역사였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네덜란드전 슈팅 하나로 고종수(당시 수원 삼성), 안정환(당시 부산 대우 로얄즈)과 더불어 여성 팬들의 인기를 쓸어 담았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로 뛰었던 이동국은 2001년 독일 분데스리가 베르더 브레멘으로 임대 이적했다. 하지만, 6개월 만에 K리그로 돌아왔다.

2002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거스 히딩크 감독이 "게으르다"는 평가를 하며 최종 명단에 뽑지 않았고 그는 군 복무를 위해 2003년 광주 상무에 입대했다.

2006 독일월드컵을 두 달 남기고 무릎 인대 파열 부상으로 본선에 나서지 못했지만, 가능성은 충만했고 2007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미들즈브러와 계약했다. FA컵 4경기, 리그컵 2경기를 치르면서 2골을 터뜨렸다.

하지만, 냉대와 질시를 받으며 그는 K리그로 유턴했다. 2008년 '망가졌다'는 평가와 함께 성남 일화로 왔지만, 나아지지 않았고 2009년 전북 현대로 이적했다. '재활공장장' 최강희(현 상하이 선화) 감독을 만나면서 부활에 성공했고 전설로 올라섰다.

K리그 7회, 아시아 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1회 우승에 228골을 넣었다. 전북으로만 따지면 360경기 164골 48도움이다. A매치 105경기에서 33골을 터뜨렸다.

국내에서는 최강이었던 이동국에게 유럽은 잊을 수 없는 아픔이었다. 그는 브레멘과 미들즈브러 진출 당시로 돌아가면 어떨 것 같으냐는 질문에 "23년 축구 생활을 정리하면서 그 부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잘 때도 하고 꿈에서도 그랬다. 쉽지는 않겠지만, 최고의 몸 상태로 가고 싶지 않은데 십자인대 수술을 하고 한 경기도 소화 못 했는데도 진출해 기쁘게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브레멘 시절이야 너무 어려 정신이 없었지만, 20대 후반의 미들즈브러는 도전 가치가 있었다. 그는 "2005~2006년에 몸 상태를 유지했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만약 그때로 돌아갔다고 해도 도전할 것이다"라며 유럽을 향한 열망을 숨기지 않았다.

후배들에게도 도전을 권한 이동국은 "다시 그 상태로 돌아가도 시기는 늦춰서라도 최고의 몸 상태로 진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보다 지금 생활이 더 편해졌다. 외국에서 한국에 전화하려면 핸드폰 하나만 있으면 되지 않나. 지금 외국에서 뛰는 선수는 예전보다 쉬웠던 것 같다"라고 추억했다.

이어 "차범근 선배나 나는 힘들었다. 전화카드를 사서 집에 전화할 시절이었고 적응도 힘들었다. 지금은 환경이 좋아졌다. 해외 진출을 꿈꾸는 선수들에게는 좋은 환경이다"라며 유럽의 장벽을 넘으라고 조언했다.


스포티비뉴스=전주, 이성필 기자 이강유 영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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