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 문희'의 이희준 인터뷰

▲ 영화 '오! 문희'의 이희준. 제공|CGV아트하우스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저였다면 도망갔을 것 같아요. 그런데 도망가고 싶다는 말도 안 하더라고요."

답답하다가 가슴아프다가 흐뭇하다가 눈물나다가. 영화 '오! 문희'(감독 정세교)의 이희준은 감정이 널을 뛴다. 그는 치매 노모에 6살 딸을 돌보며 살아가는 보험회사 조사원 두원 역을 맡았다. 두원은 일단 폐차를 요구하는 진상 고객 자동차를 해머로 내리칠 정도로 무대포에다, 치매 어머니에게 '엄마 탓'이라며 막말도 서슴지 않지만, 실제로는 속정도 책임감도 깊은 아들이자 아빠다. 그런 두원이 딸이 뺑소니 사고를 당한 뒤 유일한 목격자인 어머니와 범인을 찾아나서는 과정이 좌충우돌 속에 그려진다. 허허실실 코미디인줄 알았더니 순간순간이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 이희준은 비극과 희극이 현실과 판타지 속에 교차하는 '오! 문희'를 흘러넘치는 에너지로 이끈다.

"저희 할머니가 치매시다"고 조심스럽게 밝힌 이희준은 "살갑게만 표현하는 게 리얼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할머니를 대하는 걸 보면 정말 애정이 있지만 일상의 표현은 굉장히 다르다"고 귀띔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삶을 버티는 사람들이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공감하고 표현하려고 애를 썼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영화 헌팅을 하면서 논산의 어느 집이 두원이 집 후보가 됐어요. 그집 아버지가 치매 부모님을 모시고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절호의 기회다' 하는 생각으로 수박을 사들고 그 집을 혼자 찾아갔어요. 이 집에서 영화 찍을 사람인데 식사라도 하자고. 그 분께 시골에서 치매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들었죠. 간병하시면서 핸드폰으로 계속 언제 일어났고, 어떤 간호를 했고 하는 걸 보내시더라고요.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리얼하고, 삶의 태도를 보고 느낄 수 있었어요."

이희준은 극중 두원의 집에서 잠깐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치매 엄마 모시고 6살 난 딸을 키우면서, 나 살기도 버거운 삶을 버티고 있다는 게 대단하구나.' 이희준은 "이 사람은 여기서 버티고 있구나. 이게 정말 대단한 거구나 했다"며 "실제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다보니 그 모든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

▲ 영화 '오! 문희'의 이희준. 제공|CGV아트하우스
2016년 모델 이혜정과 결혼한 이희준은 '오 문희'를 찍던 당시만 해도 부모가 되기 전이었다. '오! 문희' 개봉이 본의아니게 밀려 이제야 관객과 만난 현재는 9개월된 아들을 둔 아빠다. 아빠가 되어 아빠가 되기전 펼친 부성애 연기를 보니 어떠냐는 질문에 그는 "다시 찍고 싶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코로나19 탓에 집콕육아에 동참해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가까이 지켜보고 있다고 행복해 한 그는, 아직도 아들이 존재한다는 자체가 실감이 잘 안 나는 초보 아빠임을 고백하기도 했다.

"이제 아이가 9개월인데, 마침 요즘 아침 육아를 맡아서 해요. 아내가 밤에 잠을 설치면 제가 아침에 보는데 2시간만 봐도 힘들어요. 저 캐릭터가 더 대단해 보이고요. 아직도 실감이 안 나요. 아기를 보고 '니가 내 아들이냐?' 이러는.(웃음) 차차 다른 감정이 생기겠죠. 요즘은 아이가 밤새 길게 자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더 예뻐보이네요."

▲ 영화 '오! 문희'의 이희준. 제공|CGV아트하우스
'엄니' 나문희와의 만남은 빼놓을 수 없는 '오! 문희'의 키포인트다. 이희준은 "너무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배님이다보니까 '잘 보이고 싶다' '칭찬받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고 촬영 당시를 돌이켰다. 하지만 그만큼 부담스럽기도 하고 걱정도 됐다며 한가지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이렇게 하면 좋겠는데 하는 느낌이 들면 바로 말씀해주시거든요. 저는 그게 좋았어요. 촬영 전 리딩할 때예요. '엄니 하는 대사를 '좀 더 맛있게 해봐요, 엄니' (시범을) 하시는데, '엄니'만 30번을 했어요. 어려웠어요. 뭔지 알겠는데 표현이 잘 안되더라고요. 봐주시고 들어주시고, 같이 했어요. 선생님이 요구하시는 게 대단한 경지의 것이었어요. 너무 멋지지 않아요? 저렇게 맛을 내시길 원하시는구나. 항상 귀기울이고 최대한 하려고 했어요. 그게 너무 좋더라고요."

죄송한 순간도 있었다. 마침 나문희와 첫 촬영이 한껏 흥분한 두원이 '엄니'에게 막 소리를 지르고 끌어내는 장면이었다. 이희준은 "선생님이 엄청 저를 무서워하셨다"며 " 컷 하면 죄송하다 하는데도, 그렇게밖에 할 수 없어서 죄송했다"고 털어놨다. 

바라마지 않던 '칭찬'도 들었다. 문제의 첫 촬영 뒤 1주일 쯤이 지난 어느날 함께 촬영을 하던 나문희가 "희준씨, 너무 잘한다. 마음대로 해봐. 내가 다 받아줄게"하고 툭 이야기를 던진 것. 이희준은 "그 소리를 오디오로 들은 감독님이 엄지 척을 하고 계셨다"며 당시가 생각난듯 히죽 웃었다. "한 달이 지나니까 엄마와 아들 같았어요. 컷 하고 나면 저도 모르게 '어머니' 소리가 나오더라고요."

▲ 영화 '오! 문희'의 이희준. 제공|CGV아트하우스
올해 초 개봉한 '남산의 부장들'에서 몸무게를 100kg까지 찌워 차지철을 모티프로 한 대통령 경호실장을 연기한 걸 떠올리면 '오! 문희'의 이희준이 낯설지 모르겠다. 이희준은 "촬영하는 영화에 젖어드는 편"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1987'에서 민주화운동을 취재하는 기자를 연기할 때는 "날이 서 있어서 같이 사는 이혜정씨가 '눈이 또 변했다'"고 할 정도였고, '미쓰백'에서 형사를 연기할 땐 또 형사처럼 변해갔단다. '남산의 부장들' 촬영 땐 이런 일도 있었다.

"밤샘 촬영 하고 KTX 첫 차 타고 올라오는데 누가 게임을 하기에 '무음으로 하시죠' 그런 거예요. '아유 죄송합니다' 하시기에 차창에 비친 저를 보니 덩치 100kg에다 정말 무섭게 생긴 아저씨가 있더라고요. 제가 사실 다 참거든요. '내가 다른 사람한테 시끄럽다고 이야기도 하네' 그랬어요. '오! 문희' 때는 PD님이 뭔가 계속 억울해 보인다고 했어요.(웃음) 실제 제가 어디에 가까운지는 잘 모르겠네요. 찍을 때마다 물드는 것 같아요."

'보고타' 콜롬비아 로케이션이 코로나로 중단된 터라 이희준은 곧 이성민과 함께하는 영화 '핸섬가이즈' 촬영에 먼저 들어갈 예정. 치렁치렁하게 자라난 머리도 촬영 준비 차원이다. 궁금하다. 이희준이 다음엔 어떤 영화에 어떻게 젖어들어 돌아올지.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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