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일 완투승 이후 서로를 껴안은 몰리나(왼쪽)와 웨인라이트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올라가는 순간, 투수는 포수 쪽으로, 포수는 투수 쪽으로 걸어갔다.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두 선수는 서로를 끌어안았다. 이전에도 숱하게 있었던 일이지만 이번에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는 게 조금 달랐다.

아담 웨인라이트(39)와 야디어 몰리나(38)는 오랜 기간 세인트루이스를 대표하는 간판스타이자, 지금도 클럽하우스에서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팀의 기둥들이다. 두 선수는 31일(한국시간) 미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부시 스타디움에서 열린 클리블랜드와 경기에서 완투승을 합작했다. 이날 웨인라이트는 9이닝 동안 4피안타 9탈삼진 2실점 호투로 최근 성적이 처져 있었던 팀에 힘을 불어넣었다.

몰리나가 2004년, 웨인라이트가 이듬해인 2005년 메이저리그(MLB)에 데뷔했고, 두 선수는 15년의 시간 동안 호흡을 맞추며 숱한 전장을 누볐다. 웨인라이트는 2010년 20승을 거두는 등 31일까지 MLB 통산 165승을 거둔 대투수로 발돋움했다. 몰리나 역시 당대 최고의 포수로 이름을 날렸다. 웨인라이트는 이날 경기 전까지 총 22번의 완투 경기가 있었고 상당수는 홈 플레이트에 몰리나가 앉아 있었다.

그런데 23번째 완투 경기는 조금 더 특별했다. 웨인라이트는 이날이 39번째 생일이었다. 1961년 이후, 39세 혹은 그 이상의 생일에 완투승을 거둔 선수는 웨인라이트가 처음이었다. 몰리나도 이날이 MLB 2000번째 경기였다. 두 선수 모두 특별한 날에 완투승을 거뒀으니 느낌이 남달랐을 수밖에 없다.

전 세계를 덮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탓에 메이저리그에서도 선수들 사이의 신체 접촉은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하이파이브를 하지 않는 팀도 많고, 최대한 거리를 두려고 한다. 손 소독제를 가지고 다니는 선수들도 있었다. 두 선수가 마지막 순간 포옹을 망설인 것도 이와 연관이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감정에 충실했고, 마스크를 착용한 것도 잊지 않았다. 적어도 그 순간 두 선수를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웨인라이트는 경기 후 멋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마스크를 쓰고 포옹을 했다. 6피트(약 182㎝) 떨어져 있는 게 맞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당시 몰리나를 포옹하지 못할 만한 이유가 이 세상에 없었다”고 웃었다. 언론 인터뷰 전 잠시 눈물을 흘렸다고 실토한 웨인라이트는 “3년 전에 (경력이) 끝났다고 생각한 선수가, 몇 년 뒤 완투승을 했다고 생각하면 이는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미친 삶이고, 미친 경기다. 나는 신의 가호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몰리나 또한 “정말 특별한 경기였다. 지금 이 순간 그(웨인라이트)와 함께 있고, 여러 해 동안 그와 함께 있었으며 그의 생일에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 우리가 영원히 기억할 순간이다. 웨이노(웨인라이트의 애칭)는 39살이지만 그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고 칭찬했다. 그러면서 몰리나 또한 “조금 울었다”고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했다.

어쩌면 웨인라이트의 완투승은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르고, 두 선수가 경기의 마지막 순간 포옹하는 것도 마지막일지 모른다. 이제 현역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몸으로 똑똑하게 느끼고 있는 두 선수였기에 더 특별한 날이었다. 다만 두 선수 모두 올 시즌 맹활약하며 베테랑의 가치를 빛내고 있다. 두 선수의 특별한 포옹을 본 세인트루이스 선수단에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기대할 만한 하루였다.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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