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기가 좋은 골키퍼, 김용대

[스포티비뉴스=잠실, 유현태 기자 이성필 기자] 경기장에 골키퍼는 단 1명이다. 그래서 특별한 포지션이기도 하지만, 때로 쉽게 소외당하는 포지션이기도 하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축구를 할 때 '골키퍼'는 마지막에야 채워지던 기억은 많은 이들에게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현대 축구에서 골키퍼의 영향력은 상당하다. 가까이는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도 확인했다. 조별 리그 독일전에서 조현우(29, 울산 현대)의 엄청난 선방은 2-0 승리의 기반이 됐다. 실점하지 않으면 패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확인시켜준 경기였다. '용대사르' 김용대(41)가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골키퍼가 중요하다고 소리 높이는 이유다.

'꾸준하다', 2000년대와 2010년대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골키퍼 가운데 한 명인 김용대의 스타일을 설명하기에 적합한 단어가 아닐까. 안정적인 볼 캐칭과 높이를 살린 공중볼 처리로 늘 든든하게 골문을 지켰다. 골키퍼 코치가 없는 열악한 여건에서 갈고닦은 '실력'이었다. 김용대가 언제나 최고가 되기 위해, 또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많이 고민한 결과다.

프로 시절엔 동료들에게도 알려주기 싫었다는 그 노하우. 이제 장갑을 벗고 지도자로 변신한 김용대는 자신이 쌓은 경험과 시행착오들을 제자들과 나누고 싶다고 말한다.

◆ 기술을 알려주기 싫었던 이유 '경쟁심'

고교 진학 시기 김용대는 본격적으로 축구 선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축구를 제대로 해봐야겠다고 한 게 중학생 때였다. 중학생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할 때 가는 형들, 못 가는 형들이 있다. 지금이야 학업하고 축구를 병행하지만, 그 당시엔 정말 축구만 했다. 내가 중학교 이후에 갈 데가 없으면 '뭐하지?'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때부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죽기 살기로 열심히 했다"라고 말한다.

축구를 잘해야겠다는 목표가 섰다. 그다음은 방법의 설정이 중요하다. 김용대는 자신의 장단점을 생각하는 것부터 우선했다. 부족한 점을 알아야 메울 수 있고, 잘하는 점은 더욱 살려야 색깔을 낼 수가 있었다. 그저 몸을 땅에 굴리는 것만으론 부족했다.

"저는 혼자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냥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뭐가 부족한가'를 고민했죠. 자기 장단점을 잘 알아야 하니까요. 단점은 숨기려고 하면 할수록 그 단점을 파고들더라고요. 예를 들어서 공중볼에 약하다고 하면, 상대편이 '어, 쟤 못 나오네'하고 알아채고 계속 공중볼을 보내요. 단점은 계속 보완해야 하고, 장점은 더 완벽하게 만들어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죠."

그래서 선수 시절엔 자신의 노하우를 동료와 공유하는 법이 없었다. 동료들 역시 경쟁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대신 김용대는 동료들을 '거울'로 삼았다. 다른 선수의 장점은 배우려고 노력했고, 다른 선수의 실수를 지켜보며 그 문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선수 시절엔 (노하우를) 이야기도 안 해줬어요. 경기를 안 뛰고 있어도 노하우나 스킬을 알려주면 제 경쟁자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대신 훈련을 하면서 장단점을 보고 좋은 것들은 습득했죠. 배움엔 선후배가 없으니까요. 심지어 경기에 뛰지 않는 선수들에게도 배울 게 있거든요. 어쩔 수 없어요. 경쟁이니까요."

▲ 잠실의 한 카페에서 질문에 고민하고 있는 김용대

◆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골키퍼 육성 철학

이제는 위치가 바뀌었다. 경쟁의 시기는 지났고 새 시대를 이끌어 갈 선수들을 키워내는 지도자가 됐다. 주말마다 엘리트 선수들을 가르친다는 김용대는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와 발전 방법을 공유하려고 한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스스로' 장단점을 잘 파악해야 하는 것. 그래서 반복된 훈련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훈련에서 직접 단점을 파악해야 실전에서 대처 방법을 숙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훈련할 땐 실수해도 괜찮다고 해요. 경기장에서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하는 거니까요. 놓쳐도 계속해보라고 하거든요. 그래야 쳐 내야 할 상황도 알게 되니까요. 연습할 때 못 잡는 건, 경기에선 죽어도 못 잡아요. 그러면서 보는 시각도 넓어지죠. (훈련은) 무한한 반복이랄까요."

지도자는 풍부한 경험을 살려 조언을 해줄 뿐이다. 다른 선택지가 더 좋을 수 있었다는 것을 일러주면, 선수가 그 방법 역시 시도해 볼 수 있다. 주입식 교육으론 축구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상황에 능숙하게 대처하기 어렵다. 선수와 소통하며 성장을 도모하는 이유다.

"저도 지도하는 선수들의 영상을 받아요. 이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물어보고 이야기를 듣죠. '아 그런 생각도 맞지만, 다른 상황도 있으니 다음에 한 번 도전해보라'고 말해줘요. 어차피 프로 선수들도 경험하며 바뀌어 나가거든요. 아마추어 선수들은 끊임없이 실수하더라도 도전하고 스스로 깨달아야 해요. 그래야 발전이 있죠."

무조건 열심히, 제대로 하라고 압박하면 할 수 있는 것도 못 한다.

"엘리트 선수들은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아요.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죠. 어차피 팀에 가서 스트레스를 받아요. 하나의 실수도 골로 연결돼서 정신적인 면이 아주 중요하거든요. 예전에 지도자들이 주입식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선수들과 소통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선수와 지도자가 눈높이를 맞춰야 하죠."

◆ 김용대가 말하는 훈련 '꿀팁'

김용대는 인터뷰 도중 자연스럽게 훈련 노하우를 풀어놨다. 첫 번째는 골키퍼로서 기본기다. 골키퍼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포지션이다. 공을 잡고 막고 쳐 내는 일, 공을 발로 차는 일까지 섬세하게 가다듬어져야 한다. 김용대는 그 방법을 '반복'을 통한 '체화'라고 말한다.

"기본기 내에서 모든 경기력이 나와요. 기본기가 틀이 잡히지 않으면 무너지게 돼 있죠. 캐칭이 안 되면 다음 동작도 없다고 봐요. 움직임도 둔해지고 판단까지 모두 꼬여버리죠. 기본자세, 캐칭, 다이빙, 위치 선정을 면밀히 체크하고 생각해야 하죠. 처음엔 생각하고 몸이 반응하지만, 부자연스럽더라도 계속 반복하면 몸에 익어요. 나중이 되면 생각은 밀려나고 몸이 반응하게 되죠. 성인 무대에선 슈팅 때리는 순간 판단을 내려야 하죠."

두 번째는 이미지 트레이닝이다. 몸을 활용해서 모든 상황에 대한 대처 훈련을 할 순 없다. 물리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머릿속'의 힘이다. 여러 상황을 가정하고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반응을 빨리할 수 있다.

"자신과 대화를 많이 했죠. 뭘 잘하지, 뭐가 부족하지. 훈련하고도 무엇이 잘됐는지, 안 됐는지. 경기에 나갈 때도 어떻게 준비하고, 어떤 마음으로 나가야 할지 대책을 세워야 했죠. 프로에서도 경험해봤지만, 그런 생각을 많이 하지 않으면 대처를 하지 못해요. 순간 '얼음'이 되니까요. 굳어버리기 때문에 순간 대처가 되지 않아요. 이미지를 굉장히 많이 그렸죠. 그걸로 대처할 수 있어요."

세 번째는 공격수의 심리를 읽는 것이다. 공격과 슈팅에 맞춰 반응하는 경우가 많은 골키퍼는 '수동적' 위치에 설 때가 잦다. 그래서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하면, '능동적'으로 한 박자 빠르게 반응할 수 있다.

"어차피 필드(플레이어)는 골키퍼 안 봐줘요. 어떻게든 골을 넣으려고 하니까요. 우리도 어떻게든 막아야 하지 않나요. 골키퍼 자신의 타이밍에 맞추지 말고, 상대편 타이밍에 맞춰야 한다고 조언해주거든요. 디테일하게 하려면 참 복잡한데, 점점 이걸 단순화시켜 가야 해요."

마지막으로 훈련과 경기에 나서는 자세다. 그리고 경기장 밖에서 일상생활 역시 포함된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스스로부터 이겨야 한다는 것. 어찌 보면 축구 선수 전체, 그리고 비 축구 선수들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프로다운 자세를 가져야 해요. 아이들한테도 '운동할 때만 열심히 할 게 아니라, 먹는 것, 자는 것도, 체중 조절도 다 훈련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해요. 꾸준히 해야 한다'고 말하죠. 절제할 땐 해야 해요. 남을 이기고 앞서가려면 독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죠. 프로 산하 유스 팀에서도 프로 무대에서 살아남기가 힘들어요. 그 외의 엘리트 선수들한텐 더 관문이 좁죠. 죽기 살기로 후회 없이 하라고 말해요."

▲ 골키퍼는 실수를 줄이기 위해 반복 훈련으로 완성도를 높인다.

◆ 골키퍼 훈련 센터 창설의 꿈

김용대는 대표팀에 합류한 뒤에야 제대로 된 골키퍼 훈련을 받아봤다고 한다. 지금도 골키퍼 코치가 없는 팀들이 여럿이다. 그는 중요성에 비해 '현실적 이유'로 홀대를 받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한국도 축구가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아직 부족해요. 학교 지도자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골키퍼 코치가 없는 곳이 많아요. 제가 선수 할 때만 해도 골키퍼 코치가 없는 것은 당연했어요. 대표팀에 가서 골키퍼 코치님한테 지도를 제대로 받아봤죠. 저 때는 그냥 공만 잘 막으면 된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런 세대가 아니죠. 빌드업도 잘해야 하고, 활동 범위도 넓어야 해요. 그만큼 중요한 포지션이고, 그래서 시스템이 잘돼 있으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골키퍼로서 역량은 지도자인 본인이 도와줄 수 있다. 하지만 선수로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보다 많다. 과학화되는 흐름에 발맞춰 선수들의 신체 능력 관리, 부상과 재활, 비디오 분석 등 다양한 요소가 결합한 '골키퍼 사관학교'를 구상하고 있다.

"운동장에선 제가 가르칠 수 있지만 피지컬 트레이닝은 전문가가 낫다고 생각해요. 프로는 비용의 문제가 크지 않으니 병원, 재활, 비디오 분석까지 다양한 요소가 다 준비돼 있으니까요. 엘리트 (학생) 선수들은 아직 그런 것이 없어요. 예산이 부족하면 골키퍼 코치부터 잘려 나가요. 센터를 만들어서 구색을 갖추려고 해요. 많이 보고 배울 수 있게요."

아직은 구상 단계지만 십시일반 골키퍼 출신들의 힘을 모으려고 한다. 자신들이 겪었던 고충을 후배들은 조금 더 쉽게 풀어나갈 수 있길 바라기 때문이다.

"필드(플레이어)는 한 팀에 30명씩 있지만, 골키퍼는 한 팀에 3명, 많아야 4명이 있어요. 그런데도 굉장히 중요한 포지션이죠. 저도 골키퍼 아카데미를 센터 개념으로 만들어보고 싶어요. 기술적으로도 줄 수 있지만, 지금은 기술 외적으로 과학적으로, 데이터로 들어가야 해요. 그런 면에선 전문가에게 또 맡겨야 하거든요. (이)운재 형하고 이야기해서 엘리트 선수들이 뭔가 도움을 줄 수 있으면 해보자고 했어요. 골키퍼 레전드들 사이에서 이슈화를 시키려고 해요."

한국 축구의 든든한 수문장이 이젠 제자들을 양성하려고 한다. 선수 생활 내내 고민이 많았기에 그의 제자들은 시행착오를 줄여가며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 그의 바람처럼 축구의 본고장 유럽에서도 골문을 지키는 골키퍼들이 탄생하길 기대한다.

스포티비뉴스=잠실, 유현태 기자, 이성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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