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반도'. 제공|NEW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그래서 '반도'였다. 한국 최초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 '반도'(감독 연상호, 제작 영화사레드피터)는 좀비, 그 이후를 이야기한다.

2016년 '부산행'은 'K좀비' 신드롬의 시작을 알렸다. 질주하는 KTX에서 생존자들은 정체불명의 좀비-그리고 지독한 이기심과 맞서 싸웠다. 1157만 관객이 열광했고 세계로도 뻗어나가 사랑받았다. 이후 달음박질 하는 K좀비는 장르가 됐다. 영화 '창궐'과 넷플릭스 '킹덤'에선 조선으로 간 좀비가 궁을 뒤덮었고, '#살아있다'에선 아파트에 고립된 자의 생존기를 그렸다.

4년이 지난 지금, 좀비영화로 '부산행'의 충격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관절꺾기의 감흥은 이미 뚝 떨어졌다. 속편 '반도'는 그래서 좀비가 아니라, 그것들로 뒤덮여 버려진 이 땅이 제목이고 주인공이며 차별점이다. 한국 최초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인 '반도'엔 멸망 이후의 이 땅이 강렬하게 담겼다. 익숙한 도시의 풍경은 곳곳에 좀비가 도사리는 폐허로 변했다. 그 곳에 있는 사람들 역시 전과 같을 수 없다.

정체불명의 좀비 바이러스가 겉잡을 수 없이 퍼져나간 '부산행'의 그 날, 한국은 하루 만에 국가기능을 상실한다. 위로는 북한에, 아래로는 바다에 막혀 꼼짝없이 고립돼 폐허가 된다. 그래서 그저 '반도'다. 전직 군인인 정석(강동원)은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다. 그러나 난민 취급도 제대로 못 받은채 이국을 떠돌다 거부할 수 없는 제안으로 다시 반도에 온다. 사실 그에겐 탈출해 도착한 그 곳이나, 다시 돌아온 폐허의 땅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버려졌던 땅엔 바퀴벌레 같은 좀비들, 들개라 불리는 생존자들, 그리고 좀비보다 더한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다. 좀비는 여전히 위협적이나 '반도'에선 이미 기본값이다. 더 위협적인 건 좀비와는 다른 의미로 인간성을 상실한 미치광이들이다. 631부대라 불리는 패거리들은 떼지어 생존자를 살육하고 심지어 이를 지켜보며 즐기는데, 야만과 광기에 사로잡힌 그들은 생김새조차 좀비와 잘 구분되지 않는다. 그들 탓에 위기에 빠졌던 정석은 부대를 탈출해 숨어 지내던 민정(이정현)과 준이(이레) 가족의 손에 목숨을 구한다.

'반도'는 보는 맛이 좋다. 역할이 막중한 만큼 꼼꼼하게 완성된 여러 공간들이 찬찬히 뜯어볼수록 더 보이는 디테일과 미술적 완성도를 자랑한다. 내내 어둠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영화 속 거리가 특히 익숙하고도 낯설다. 서울 도심과 고가, 인천 항만 등 간판이며 버스 번호까지 오롯이 남은 우리 삶의 공간이 초토화한 채 멈춰 있기 때문이다. 어둠과 검은 때, 우울로 뒤덮인 채 멈춰선 서울의 곳곳은 자체로 묘한 감흥을 안긴다.

그럼에도 '반도'에는 절망에 함몰되지 않는 활력이 있다. 액션마다 생존을 향한 거친 숨소리와 두근거림이 있다. 호흡을 들었다 놓는 리듬도 쫄깃하다. 초반엔 강동원이, 후반엔 이정현과 이레가 중심이다. 액션도 비주얼도, 오랜만에 강동원을 보는 맛이 분명하고, 걸크러시 여전사 액션도 후련하다. 특히 운전대를 잡은 소녀 배우 이레가 선보이는 카체이싱은 추격전을 넘어선 강렬한 타격감으로 액션 클라이막스를 책임진다. '반도'가 '부산행'보다 더 강하고 빠르고 세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다. 맨손으로 때려잡던 좀비를 이젠 한꺼번에 쓸어버린다.

단순한 서사에 격렬한 액션과 새로운 볼거리가 더해진 '반도'는 여전히 흥미진진하고 끝까지 눈을 뗄 수 없는 영화다. 오감을 자극하는 액션 블록버스터로서 극장에 가서 다시 한 번 확인하고픈 욕구를 자극한다. 좀비 액션물로서 오락영화의 매력이 강력하지만, 감독의 세계관과 문제의식도 분명하다. 인간성을 상실한 자본주의와 뒤틀린 상식이 지배하는 폐허는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그 곳에도 희망은 있다.

'부산행'에서 좀비가 보였다면 '반도'에선 사람이 보인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부산행'을 복습하고 관람해보시길.

7월 1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15분.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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