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클 조던도 고전하던 시기가 있었다.
[스포티비뉴스=맹봉주 기자] 마이클 조던도 처음부터 농구 황제는 아니었다.

1980년부터 1988년까지 NBA는 LA 레이커스와 보스턴 셀틱스가 양분했다. 이 기간 두 팀은 파이널 우승 8번을 합작했다(레이커스 5회, 보스턴 3회).

레이커스엔 매직 존슨이, 보스턴엔 래리 버드가 있었다. 대학시절부터 라이벌이었던 두 선수는 NBA에 와서도 레이커스와 보스턴을 이끌며 파이널에서 격돌했다.

시간이 지나고 1980년대 후반이 되자 레이커스와 보스턴 왕조는 힘을 잃었다. 대신 강한 몸싸움과 수비를 앞세운 디트로이트 피스톤스가 새롭게 부상했다.

척 데일리 감독에 아이재아 토마스, 조 듀마스, 데니스 로드맨, 빌 레임비어, 릭 마혼, 존 샐리로 이뤄진 디트로이트의 별명은 '배드 보이즈'였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플레이가 상당히 거칠었다.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수위의 몸싸움이 코트 안에서 벌어졌다. 심판이 잠시 안 보는 사이를 틈 타 상대 선수를 가격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마냥 난투극만 즐겼던 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실력이 있었다. 로드맨과 레임비어는 공격기술은 떨어졌지만 몸싸움과 리바운드 능력은 리그 최고 수준이었다. 토마스는 NBA 역대급 포인트가드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듀마스는 공격과 수비가 모두 되는 슈팅가드였다. 특히 수비에 있어선 조던도 인정할 정도였다. '배드보이즈' 디트로이트에서 유일하게 매너가 좋은 선수이기도 했다(NBA에선 매년 최고의 스포츠맨십을 발휘한 선수에게 상을 수여한다. 그 상 이름이 '조 듀마스상'이다. 초대 수상자인 듀마스를 기념하기 위해서다).

80년대 말 주가를 높이던 조던도 디트로이트 벽은 넘지 못했다. 1985년 신인상을 시작으로 매년 성장을 거듭한 조던은 1988년 생애 첫 정규 시즌 MVP와 올해의 수비수에 뽑힌다. 조던은 평균 득점(35점)과 어시스트(5.9개), 스틸(3.16개), 블록슛(1.6개)이 모두 팀 내 1위였다. '농구 황제'로서 전성기의 포문을 알리는 시점이었다.

하지만 디트로이트만 만나면 작아졌다. 1988년부터 3시즌 연속 디트로이트와 동부 콘퍼런스 플레이오프에서 붙어 1승 4패, 2승 4패, 3승 4패로 모두 탈락했다.

디트로이트는 '조던 룰(Jordan Rules)'이라 불리는 수비로 조던을 강하게 압박했다. 듀마스를 조던 전담 수비수로 붙이면서, 조던이 공을 잡으면 3~4명의 수비수가 기습적으로 도움수비를 갔다.

조던은 집중수비를 뚫고 어떻게든 자기 득점을 만들어냈지만 문제는 다른 선수들이였다. 스카티 피펜, 존 펙슨, 호레이스 그렌트 등은 조던의 공격 부담을 줄여주지 못했다. 결국 '조던 룰(Jordan Rules)' 수비를 성공시킨 디트로이트는 1988-89, 1989-90 2시즌 연속 파이널 정상에 올라선다. 

조던과 시카고는 '배드 보이즈'의 노쇠화가 시작된 1990-91시즌에야 동부 콘퍼런스 파이널에서 디트로이트를 4승 무패 스윕으로 제압했다. 파이널에 오른 시카고는 창단 후 첫 우승컵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스포티비뉴스=맹봉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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