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AFC U-23 챔피언십 우승으로 도쿄행 티켓을 따낸 1997년생이 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는 일이다. ⓒ대한축구협회



[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2020년 도쿄 하계 올림픽도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을 무시하고 열릴 수는 없었다. 7월 24일 개막 예정이었던 도쿄 올림픽은 성화봉송 행사를 시작하던 찰나에 결국 최대한 1년 뒤까지 연장하기로 24일 합의했다. 

도쿄 올림픽 연기가 결정되자마자 터져나온 뉴스는 개최국 일본이 입게 될 경제적 타격이다. 경제손실이 무조 7조 원에 육박한다는 보도로 일본의 재정 부담에 대한 뉴스가 주를 이뤘다. 일본이 기어코 예정대로 올림픽을 열려는 의지를 보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축구 뉴스로 눈을 돌리면 한국 대표팀이 참여하는 여자 축구 최종 예선 플레이오프가 3월에서 6월로 연기됐고, 코로나19 확산이 진정되면 예정대로 열릴 전망이다. 남자축구는 코로나19로 일정이 중단된 북중미 지역을 제외하면 본선 참가국이 확정됐다. 문제는 남자 축구의 경우 18인 엔트리 중 24세 이상 선수를 세 명만 포함해야 하는 규정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하는 월드컵과 차별성을 두기 위해 올림픽 남자 축구는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부터 23세 이하 선수가 출전하는 대회로 운영되어 왔다. 1996년 대회에는 24세 이상 선수 3명의 출전을 허용하는 와일드 카드 제도가 생겨났고,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역사상 처음으로 1년 뒤로 연기 결정이 내려진 이번 도쿄 올림픽에도 이 규정이 변함없이 적용될 경우 당초 대회 참가를 준비하던 1997년생 선수들의 출전이 불가능하다. 도쿄 올림픽 연기 결정이 내려진 뒤 대한축구협회 고위 관계자와 김학범 올림픽 축구 대표팀 감독 모두 "FIFA와 IOC(국제올림픽위원회)가 결정할 사안이라 어떤 의견을 내기가 어렵다"며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1997년생 선수들은 '멘붕(멘털 붕괴)' 상태다. 2020시즌 K리그 개막로 미뤄진 가운데 올림픽 참가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소식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건강에 미칠 영향이 크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표하는 속에도 이해할 수 있는 결정이라는 반응이다.
▲ 코로나19 사태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도 마스크를 착용한 뒤 행사에 참석했다. ⓒ대한축구협회


중요한 것은 2021년에 열릴 가능성이 큰 도쿄 올림픽에 나설 선수단을 어떻게 구성하느냐다. 그레이엄 아놀드 호주 올림픽 대표팀 감독은 "이미 IOC에 남자 축구의 경우 24세로 나이대를 올리는 것을 고려해 달라고 말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스페인 유력 스포츠지 아스는 "1997년생 선수의 출전이 논리적이라는 것은 모두가 공감하는 일"이라는 컬럼을 게재했다. 아스가 주장한 가장 큰 근거는 예선 출전권을 얻은 선수가 본선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도쿄 올림픽 연기가 발표된 이후 다른 종목의 경우 예선을 통해 본선 진출권을 얻은 선수들의 권리를 모두 보장하겠다는 IOC의 입장이 나왔다.

축구의 경우 예선전 참가 선수가 그대로 본선에 나서는 형태는 아니다. 2020년 AFC U-23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한국 23세 이하 대표 선수들은 다시 본선 18인 엔트리에 들기 위해 경쟁해야 한다. 하지만 3명의 와일드 카드 소집 외에 예선 MVP 원두재(23, 울산 현대)를 포함한 다수가 본선의 주축 멤버다. 

축구계 관계자들의 생각도 비슷하다. 올림픽 대표팀 운영과 관련이 있는 한 관계자는 "예선에서 고생한 선수들이 출전할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올림픽 축구는 23세 로 열려왔고, 그런 규정이 있어왔기에 해가 바뀐다고 무조건 바꿔준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며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올림픽 규정은 남자 축구의 경우 23세 이하 선수가 주축이 되는 팀의 참가를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이 규정보다 중요한 것이 올림픽 정신이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 피에르 쿠베르탱은  “올림픽 대회의 의의는 승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아마추어리즘을 표방한 올림픽은 세계 간 경쟁이 아닌 평화와 우호증진을 위해 열려왔다. 상업적 가치와 승리를 향한 과열 경쟁 속에 본연의 가치가 훼손되고 있지만, 여전히 스포츠는 우리네 삶의 영역 안에서 '페어플레이'의 가치를 놓지 않은 분야다. 원칙은 중요하지만, 그 원칙에도 원칙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의 꿈이 불의의 사건으로 좌절되는 상황을 막아야 하는 것이 올림픽의 정신이다.

▲ 김학범 올림픽 남자 축구 대표팀 감독 ⓒ곽혜미 기자


23세 이하 출전은 월드컵과 차별화를 포함해 동등한 경쟁 여건을 마련하기 위한 장치다. 승리가 아니라 참가, 성공이 아니라 노력이 중요한 가치라고 설파하는 올림픽은, 본선을 준비해온 예선전 참가 선수들의 출전을 막아아선 안된다. 

1997년생 출전 허용은 24개 본선 참가국 모두 반대 의견을 낼 가능성이 낮다. 자국서 열릴 올림픽을 위해 전략적으로 1997년 이후 출생 선수들로 팀을 만들어온 일본도 마찬가지다. 

2021년에 열릴 도쿄 올림픽은, 유로2020이 그렇듯 2020년 도쿄 올림픽이라는 이름으로 열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19라는 세계적 사건으로 발생한 연기인만큼, 올림픽 남자축구 엔트리 구성은 2020년 7월 개막을 기준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것이 페어 플레이로, 그것이 올림픽 정신이며, 그것이 스포츠가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여야 한다.

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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