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용수 FC 서울 감독은 파이널 라운드에 순위를 고민하지 않는 유일한 인물이다. ⓒ한준 기자
 
[스포티비뉴스=연세대백주년기념관, 한준 기자] "우리는 잃을 게 없습니다."

FC서울이 최용수 감독을 재선임한 것은 1년 전 이맘때다. 서울은 강등권으로 추락해 위기를 겪고 있었다. 최 감독 부임에도 기어코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떨어져 K리그2 플레이오프를 통과한 부산 아이파크과 외나무 다리 대결을 벌여야 했다. 부임 1년이 지난 지금 최 감독은 구단의 특별한 투자 없이 팀을 파이널 라운드 A그룹에 안착시켰다. 3위 자리에서 마지막 5경기를 치른다. 자력으로 2020 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최 감독은 선수들에게 AFC 챔피언스리그 티켓이라는 단어를 입밖에 내지 말라고 했다. 최 감독은 파이널 라운드 5경기가 ACL 티켓을 따기 위한 도전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16일 서울 신촌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파이널 라운드 미디어데이. 기자단과 자유 인터뷰 시간에 만난 최 감독은 "올해 경남을 봐서 알겠지만 리그와 ACL을 병행한다는 것은 정말 큰 무리수를 두는 거거든. 어설프게 접근했다면 두 개 다 날릴 수 있어요"라며 준비가 되지 않은 팀에게 ACL 티켓은 오히려 팀을 망가뜨리는 독이 될 수 있다고 경계했다.

◆ 강등권 팀에서 ACL 티켓 경쟁으로, 최용수는 이미 서울을 바꿔놨다

한 경기 한 경기 결과에 순위가 요동치고, 우승컵과 ACL의 향방이 엇갈리는 살얼음판 같은 파이널 라운드가 시작되는 시점에 최용수 감독이 "우리는 잃을 게 없다"고 말한 까닭은, 그의 지향점이 팀의 최종 순위보다, 팀의 전력이기 때문이다. 최용수 감독은 파이널 라운드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 정규 라운드에서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우승권 두 팀, 울산 현대와 전북 현대를 이겨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 최용수 서울 감독은 자신있게 회견장에 가장 먼저 등장했다. ⓒ한준 기자

"우리가 전북하고 울산한테 (못이기는)이런 징크스가 자칫 패배의식으로 젖어들면 내년에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밖에 없어요. 그 두 팀을 좀 한 번 이기고 싶죠. 저도 그렇고 선수들도 그렇지 않을까."

잃을 게 없다는 말은 이 목표를 이야기하며 나온 얘기다. 울산과 전북을 이겨보고 싶다는 얘기는, 단지 승점 3점을 가져오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두 팀과 정면 승부를 펼쳐 경기력으로 넘어보고 싶다는 '야심'이다.

"상대가 워낙 개인 선수 구성이나 이런 모든 게 우리보다 객관적으로 앞선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축구는 공 하나 갖고 싸우는 건데…. 애들이 기가 죽어서 접근하니까. 너무 나는 그게 화가 나고. 그런 경기는 아마 하지 않을 겁니다. 승패에 상관없이."

◆ 울산과 전북을 이겨보겠다는 최용수, 결과가 아닌 내용을 만들고 싶은 '순수주의자'

최용수 감독은 지는 것보다 싫은 것은 패배의식에 젖어 치르는 경기다. 창단 후 최악의 시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난 시즌의 서울이 그랬다. 2019 시즌 서울은 세르비아 공격수 페시치를 영입했지만,  스쿼드 구성이나 선수단의 전력 자체가 지난 시즌보다 월등히 좋아진 것은 아니다. 최용수 감독이 바꾼 것은 선수들의 태도와 정신, 그리고 응집력이다. 서울이 후반기에 찾아온 부진에도 전반기에 돌풍을 일으킬 수 있었던 원동력이 거기에 있다. 최 감독이 꺾인 후반기에 선수들을 질타하지 않은 것은 그래서다. 서울은 상위 4위 내 팀 중 유일하게 여름 영입이 없었고, 울산-전북과 승점 차가 계속 벌어지는 와중에도 3위를 지켰다.

"선수들이 열심히 했어요. 많이 뛰고. 그러다 여름이 되니까. 전체적으로 방전이 되다 보니까, 우리가 백업에 경쟁력 있는 선수가 부족했던 게 사실이고. 그래도 선수들에게 고마운 건 포항 개막전부터, 오늘도 상당히 강도 높은 훈련 했는데도, 힘들면서도 자기들끼리 재미있게 하더라고요. 마지막까지 유종의 미를, 일관성 있는 모습 보여주자는 분위기가 되어 있는 거예요. 이런 친구들한테 결과가 안좋다고 내가 잡을 이유가 없는 거죠. 감독은 구단 역사 속에 하나의 점일 뿐인데. 그게 올해 내년 이어지면 역사가 되는 거잖아요. 점이 선으로 연결되는 게 역사. 그래서 최선을 다하려고요."

▲ 최용수 FC 서울 감독 ⓒ한국프로축구연맹

최용수 감독은 다음 시즌 서울에 ACL 티켓이 아니라, 다음 시즌에 더 잘할 수 있는 팀을 만들어 주는 것이 기나긴 서울의 역사 안에서 자신이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진정한 목표라고 말했다. 그리고 선수들도 그런 최 감독의 의지에 공감했기 때문에 흔들림없이 버티고 싸우고 있는 것이다. 최 감독은 파이널 라운드에서 울산과 전북을 잡을 수 있다고 기대한다. 선수들의 의지가 활활 타오르고 있는 것을 훈련장에서 매일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선수들도 상당히 독기를 품고 있지 않을까. 자존심이 다른 팀에 비해 못지 않은데."

객관적 전력과 무게감에서 울산, 전북에 열세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마지막 한 판의 승부에서, 전력을 쏟으면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있다. 

"전북하고 울산은 정말 내가 한번… 지고 싶지 않은 상대고. 앞으로 계속 우리는 이런 팀을 뛰어 넘지 못하면 진정한 강팀으로 갈 수 없죠."

여름 이적 시장에 영입은 없었지만, 9월에 전역한 국가 대표급 미드필더 이명주와 주세종의 가세로 파이널 라운드를 맞이하는 서울의 전력은 상승했다. 

"명주, 세종이가 들어오면서 균형, 안정감이 좋아졌고. 수원전은 특별한 경기였는데, 그 경기가 고비였어요. 그 경기 이후에 선수들이 자신감을 찾은 거 같고. 저희끼리도 잘 헤쳐나오더라고요. 가지고 있는 잠재력들은 전 상당히 좋다고 봐요. 이게 어느 때 폭발할지 기대가 돼요."

주세종은 서울의 후방 빌드업에 안정감을 줬고, 조금은 헤매는 듯하던 이명주는 수원 삼성과 슈퍼매치에 골맛을 보며 침체된 팀을 살린 것은 물론 그 자신도 최고의 모습을 찾았다. 최 감독은 이 두 선수를 중심으로 한 전술 구조를 만드는 데 공을 들이느라 22세 이하 선수를 선발 명단에 넣지 않고 교체 카드를 두 장만 쓰는 경기를 해왔다. 

▲ 여름에 영입이 없었던 서울운 주세종, 이명주 전역으로 뒤늦게 힘을 얻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조영욱의 부상이라는 변수도 있었지만, 주세종, 이명주, 고요한, 오스마르를 빌드업의 중심으로 단련하는 과정의 전략적 선택이었다. 조영욱이 부상 중이기는 하지만 최용수 감독의 3-4-1-2 포메이션에서 경기에 뛸 만한 포지션의 22세 이하 선수들은 이 네 선수와 포지션이 겹쳤다. 최 감독이 어린 선수를 키울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반기에 조영욱(공격수/미드필더), 윤종규(풀백), 김주성(센터백) 등에게 기회를 줬다. 하지만 팀 운영이 단지 유망주 육성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경고 누적 선수와 체력 문제를 겪을 선수가 나올 마지막 파이널 라운드에 최용수 감독은 22세 이하 선수를 깜짝 카드로 활용할 복안도 갖고 있다. 

사실 최용수 감독이 처음 서울을 이끌던 당시 그는 철저한 결과주의자이자 실리주의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내용보다 결과로 말하는 감독이었다. 서울이 최용수 감독을 재선임하면서 원한 것은 결과였다. 그러나 최용수 감독이 굳이 서울을 다시 맡은 이유는 그 자신도 더 나아진 모습,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다. ACL 티켓이라는 결과가 아니라, 울산과 전북을 이길 수 있는 팀을 만들겠다는 꿈은, 최용수 감독을 순수주의자로 보이게 한다.

"우리는 우승하려고 이 전쟁터에 뛰어든 게 아니기 때문에. 달라진 모습, 우리 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팬들을 향해 발악을 하고 있는 거니까."

최용수 감독은 서울을 다시 눈부신 팀으로 만들고 싶다. 그것이 그가 다시 서울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이유다. 그것이 서울 감독 재도전의 명분이다.

"구단하고도 계속 지금 끊임없이 소통을 하고 있고,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평행선을 갈 건지. 저는 아직 언질을 받은 건 없고. 일단 내가 해야할 것, 선수들이 팬들에게 해야할 것, 그것을 해놔야죠. 구단도 생각이 있지 않을까."

서울이 ACL 티켓을 얻을지 말지보다, 서울이 울산과 전북을 상대로 어떤 경기를 펼칠지가 더 궁금해졌다는 점에서, 최용수 감독은 결과주의로 인해 축구 기술적 발전이 더디다는 K리그를 한 발 더 나아가게 했다.

스포티비뉴스=연세대백주년기념관, 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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