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과 무관중 경기를 치른 축구대표팀 ⓒ대한축구협회

[스포티비뉴스=인천국제공항, 이성필 기자/이충훈 영상 기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H조리그 남과 북의 평양 겨루기는 0-0으로 끝났다. 승자는 없었지만,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깜깜이' 원정 경기에서 우군 한 명 없이 나서 패하지 않고, 부상 없이 돌아온 것은 충분히 박수를 받아 마땅한 일이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의 1차 목표는 조 1위 본선 진출이다. 아시아 축구가 평준화의 길을 걷고 있고 FIFA 랭킹 23위 이란이 105위 바레인에 0-1로 패하는 등 이변도 속출하고 있어 향후 바레인 원정 경기나 북한과 홈 경기 등 모든 만남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  

17일 오전 0시 45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대표팀 주장 손흥민은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부상 없이 잘 돌아왔다"며 전쟁 같았던 평양 원정에서 쓰러지지 않았던 선수들을 격려했다. 선수단장이었던 최영일 대한축구협회 부회장도 "어려운 상황에서 잘 싸웠다. 전쟁 치르듯이 했다"며 빡빡한 경기였음을 강조했다.

남북 겨루기는 언제나 화제였고 기억에도 남았다. 축구는 정치, 사상, 이념과는 거리가 멀지만 분단이라는 특수성을 안고 있어 항상 치열하게 싸웠다. 경기 외적인 변수보다는 내적인 것에 좀 더 관심이 쏠렸다. 2010 남아공월드컵 3차예선과 최종예선에서는 남북 관계가 나쁜 상황에서 두차례 모두 북한 스스로 홈이 아닌 제3국(중국 상하이) 경기를 선택해 파문은 있었지만, 오래 퍼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홈경기를 개최한다고 호기롭게 아시아축구연맹(AFC)에 경기 계획까지 알린 뒤 축구대표팀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그야말로 최악에 가까웠다.

북한은 대한축구협회와 통일부,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협의해 정리한 18명의 공동취재단에 대한 취재 승인 여부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북한축구협회는 북한 비자 발급을 위해 필요한 초청장을 시간을 끌며 아무 이유 없이 보내지도 않았다.

이 과정에서 스포티비뉴스는 9월 26일 조직된 공동취재단에 포함됐다. 평양 원정이 열린 15일까지 20일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선수단이 중국 베이징을 거쳐 갈 것인지, 육로, 서해 직항로 등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아 그 어떤 행동도 어려웠다.

공동취재단에 포함된 언론사들은 혼란의 연속이었다. 북한의 명확한 대답이 나오지 않으니 일단 축구협회가 최후 시나리오로 택한, 중국을 통해 평양으로 가는 방법에 동승하기 위해 중국 비자를 신청했다. 이 역시 10월 첫째 주는 중국 국경절 연휴로 중국 비자센터가 일주일을 쉬었다. 10월 8일에 비자센터가 다시 문을 열었지만, 9일은 한글날이라 또 휴무에 들어갔다.

선수단과 취재진의 중국 비자는 8일에 접수됐고 스리랑카전 당일인 10일 비싼 비용을 들여 급행도 아닌 특급으로 발급됐다. 일단 비자를 받고 주중 북한 대사관과 영사관이 있는 베이징과 선양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이마저도 선수단이 확보한 베이징-평양 구간을 주 3회 운항하는 항공기 중국국제항공공사(에어차이나)가 만석이라 취재진은 선양에서 국제연합(UN)의 대북제재대상에 해당하는 북한 국적기인 고려항공을 타야 했다.

고려항공은 오직 현금 결제만 가능하다. 달러 거래만 가능하다는 뜻이다. UN의 대북제재를 피하기 위해서는 통일부의 방북승인을 받은 뒤 한국은행의 확인을 거쳐 항공료를 송금하는 복잡한 과정이 있었다. 고려항공이 주말에는 휴무였고 선양에서 평양 출발이 오전이라 물리적으로 탑승 자체가 어려웠다. 혹시 몰라 북한 비자 신청서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입국사증 신청서'도 미리 작성해놓았다.

▲ 귀국하는 손흥민(앞)과 김판곤 국가대표 감독선임위원회 위원장(뒤) ⓒ연합뉴스

하지만, 스리랑카전 당일 선수단 방북이 13일 베이징 출발, 14일 평양 이동으로 확정되고 취재진과 지상파 3사로 구성된 코리아풀 중계방송단, 응원단에 대한 회신은 오지 않았다. 11일에는 북한축구협회가 선수 25명 임원 30명 비자 발급에 대한 회신을 보내면서 역시 취재진에 대해 회신을 하지 않았다. 사실상 방북 취재는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나 북한이 언제라도 태도를 급변할 가능성이 있었다. 주말이었던 지난 12~13일 사이에도 응답이 올 수 있어 꼼짝없이 비상대기 상태였다. 일부 취재진은 선양에서 대기했다가 초청장이 나오면 바로 행동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이 역시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경기 하루 전인 14일 북한축구협회는 대한축구협회에 고려호텔 요금만 알리는 회신을 했을 뿐, 취재진 방북에 대해서는 역시 말이 없었다.

준비하다 힘 빼고 깜깜이 문자에 의존해 기사를 만드는 황당한 경험은 최악에 가까웠다. 평양에서 전송된, 북한 기자 5명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벤투 감독의 소감이 경기 당일 오전에 공개된 것도 황당함 그 자체였다.

북한과 소통이 중요 업무였던 통일부는 이 과정에서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경기 일주일 전까지 평양 원정과 관련해 주무부처는 아시아축구연맹(AFC)과 직접 교감하는 대한축구협회라며 "이번 경기는 2022 카타르월드컵 예선 경기일 뿐"이라며 뒷짐을 지고 있었다. 생중계, 취재진 방북 무산에 대해서는 "다른 방법으로 노력하겠다"는 말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축구협회, 문체부와 협의사항을 독단적으로 브리핑해 혼란을 야기했다. 이번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고 싶었는지 경기일에 근접하자 주도적으로 나섰고 축구협회가 알릴 사안을 사실상 뺏어서 알리는 경우도 있었다. 경기 중계 영상 제공과 지아니 인판티노 회장의 방북이 대표적이었다. 경기 영상이 방송 중계용인지는 알 수 없는데도 선수를 쳤다가 말을 바꿨다. 진위 파악에 시간만 낭비했다. 요즘 말로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는 것)'를 하지 못했다.

결국, 경기 당일 스포츠의 생명인 생중계가 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은 석기 시대로 돌아갔다. 현지 취재도 없으니 축구협회 홍보팀 직원이 보낸 소식 외에는 알 수가 없었다. 이를 받은 축구협회 직원은 통일부, 문체부 등 주요 정부 관련 부처에 다시 전달하는 수고를 마다치 않았다. 축구협회 한 관계자는 "모스부호로 알리는 것이 더 빠르겠다"며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북한과는 상황에 따라 최종예선에서 다시 만날 가능성이 있다. 당연히 홈과 원정 경기를 치른다. 5G 기술이 생활을 지배하는 시대에 평양 원정이 다시 성사되면 취재 불가, 응원 불가, 중계 불가가 또 나올까. 격렬한 경기를 치르고 온 주장 손흥민이 북한 선수들에게서 들었던 거친 욕설에 대한 반응으로 갈음하면 좋을 것 같다. 충분히 동감 가능한 발언이었다.

"거짓말을 하면 안 되는 선수로서…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

스포티비뉴스=인천국제공항, 이성필 기자/이충훈 영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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